“치과, 피부레이저 시술 합법”… 진료경계 무너진다
“치과, 피부레이저 시술 합법”… 진료경계 무너진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9.02 14:02
  • 호수 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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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진료권 두고 직역‧진료과별 밥그릇 싸움
▲ 치과의사의 미용 목적 보톡스 시술을 허용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임원진.

심장내과 vs 흉부외과, 스텐트 시술 협진 주도권 다툼도
환자들의 혼란만 가중돼… “보건당국 결정 기다릴 수밖에”

최근 대법원이 치과의사의 피부레이저 미용 시술과 안면부 보톡스 시술은 합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진료영역에 대한 직역‧진료과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 또한 혼란이 가중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치과의사 A씨가 치과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으로 환자의 얼굴부위에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의료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검사 상고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치과의사의 안면 레이저 시술은 구강악안면외과 범위에 속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 신체나 일반 공중위생상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어 치과의사 면허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단, 대법원은 안면부 시술을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라고 단정한 사안은 아니고,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인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면부 레이저 시술이라는 개별 사안을 인정한 것이라는 조항을 달았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치과의사의 안면 미용 보톡스 시술이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한 번 치과의사의 진료영역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 의료계는 유감을 표명했다. 현행 의료법상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교육 및 수련의 정도, 전문지식 및 경험에 있어서의 차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치과의사의 미용 목적 안면 보톡스 시술에 이어 프락셀 레이저까지 허용한 것에 대해 충격을 금치 못한다”고 비난했다.
피부과의사회 또한 “안면부 피부에는 다양한 질환이 있고,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잡티로 보여질 수 있는 피부암”이라며 “피부암을 시진(눈으로 환자상태를 관찰하는 것)으로 구별하기 위해 피부과 전문의는 4년간의 전문의 수련과정을 밟아 어떤 반점이 피부암이며 피부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를 교육받는데 이런 피부암 병변을 단순히 레이저로 제거한 후 이후에 겪게 되는 환자의 고통은 전혀 생각지 않은 판결”이라고 일갈했다.

◇의사vs한의사, 치매치료 진료권 다툼
한의사와 의사도 치매치료를 두고 영역다툼을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 사업’에 대해 철회를 요구했고 대한한의사협회는 즉각 반대 서명을 냈다.
해당 사업은 서울시가 지난달부터 치매와 우울증 검사를 통해 인지기능이 저하되거나 우울감이 있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1대1 생활행태 개선교육과 침 치료 및 한약제제 투여 등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 신경과에서 담당해왔던 치매치료를 한의사에게 맡김으로서 전문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간이 정신상태 검사 등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위해서는 신경해부학, 신경병리학 등 현대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이 같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한의사가 신경 심리검사 결과를 활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한의계는 “이는 치매 진단과 치료에 있어 한의사와 한의학의 기여도를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한의과대학과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치매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이에 따라 모든 한의사는 치매 관리법 제2조 2항에 따라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고 반박하며 현재 계획대로 어르신 건강증진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심장내과vs흉부외과, 스텐트 협진 고시 반발
최근에는 이같은 직역별 갈등이 진료과별 다툼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병원 내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끼리도 저수가로 인해 진료권 경쟁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지난 2014년 발표한 흉부외과와 심장내과의 스텐트 협진 고시이다. 기존 3개까지만 인정하던 스텐트 보험급여 제한을 폐지하는 대신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사가 협진을 통해 치료방침을 정하라고 규정한 것이 골자다.
즉, 심장내과 의사와 흉부외과 의사가 동수로 팀을 구성해 협진을 하라는 것이다. 스텐트 개수 제한을 폐지하는 대신 협진을 함으로써 스텐트 삽입술이 과잉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게 복지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텐트 삽입술을 주도하는 심장내과에서는 “스텐트 무제한 급여화와 협진 운영을 하나로 결부시키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라며 “협진을 의무화한 고시안은 의사의 진료권 제한과 응급환자 시간 지체, 부당삭감 빌미제공 등 임상현장에서의 수용성 문제 등을 무시한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관상동맥이 협착될 경우 빠른 스텐트 시술이 필요한데 해당 고시를 준수하기 위해선 흉부외과 의사를 기다려야 하거나 흉부외과 의사가 없는 곳은 의료협약을 맺은 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하기 때문에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면, 흉부외과에서는 “지금까지 심장내과가 독단적으로 진행하던 스텐트 시술에 대해 흉부외과가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오히려 협진 의무화 없이 개수 제한만 풀리면 심장 스텐트 시술이 더욱 남용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같은 환자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의 갈등은 각자의 논리로, 제도 탓으로 돌려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의료현장에서 수시로 맞닥트리면서도 말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복지부는 결국 지난해 스텐트 협진 고시 의무화 방침을 자율적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사실상 협진 의무화에 반대했던 심장내과 측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이같이 의료 전문가 단체가 진료범위를 지키기 위한 논쟁을 이어가자 진료를 받기 위해 어느 진료과를 찾아야 할지 되레 환자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의료 전문가를 자칭하는 의료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직역에서 또 같은 직역에서도 다른 과별로, 점점 세분화되는 침해의 문제는 좀처럼 그 간극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 급여와 비급여 문제에서 수가결정 과정으로 연계된 모든 문제는 풀리지 않고 얽혀있다.
이와 관련,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사실 이 문제는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보건당국의 신호정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개탄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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