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관행 바꾸는 ‘김영란법’ 본격 시행… 초기 혼란 극복이 관건
한국사회 관행 바꾸는 ‘김영란법’ 본격 시행… 초기 혼란 극복이 관건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9.30 13:51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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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부터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전면 시행되면서 소관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물론 공직사회, 검찰과 법원 등 온 사회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재계와 관가는 진작부터 ‘김영란법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소속직원 교육 등 법 시행 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양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가 제정안을 발표한 뒤 위헌 논란 등으로 인해 몇 차례 처리가 불발됐지만 지난 7월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이날부터 본격 시행하게 됐다.
법률안에 따르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을 경우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학교 선생님에게는 음식물·선물 제공이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학생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직무 관련자로부터의 골프 접대 또한 일종의 향응 수수로 보고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외부 강의의 경우, 장관급은 원고료를 포함해 시간당 40만원, 차관급은 30만원, 4급 이상은 23만원, 5급 이하는 12만원이 상한액이다. 다만,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엔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부정청탁의 유형으로는 △인가‧허가 등 업무처리 △행정처분‧형벌부과 감경‧면제 △채용‧승진 등 인사 개입 △공공기관 의사결정 관여직위 선정‧탈락 개입 △입찰‧경매 등에 관한 직무상 비밀 누설 △특정인 계약 선정 또는 탈락에 개입 △학교 입학‧성적 등 처리‧조작 △징병검사 등 병역 관련 업무 처리 △사건의 수사‧재판 등 개입 등이다.
이날 본격적으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식당가는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광화문이나 여의도, 세종시 등에 있는 식당가는 김영란법 시행 충격에 대비해 3만원 이내의 메뉴로 구성한 ‘김영란 세트’ 마련 등 다양한 자구책을 고안하고 나섰다. 고객들도 김영란 세트를 확인하고자 식당가로 몰리거나 맘 편하게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첫 시범케이스로 고발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렸다.
불가피한 식사자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비용 처리를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실제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상담콜센터도 하루종일 식사비용 처리에 관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더치페이(각자 계산) 문화도 확산될 전망이다.
장례식장은 화환과 부조금을 모두 준비해 1인당 10만원의 한도를 넘긴 경우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느라 분주했으며, 김영란법 대상에 해당되는 국립대 및 사립대 의과대학 관련 병원들은 병원로비에 이를 알리는 현수막과 안내문을 배치하고 진료 및 입원 청탁과 감사 선물 등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환자들에게 알렸다.
지자체의 각종 행사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일 예정이다. 9월 29일 개막한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준비한 조직위원회는 오해를 살만한 초대권 발행을 아예 취소했으며, 개막식 뒤풀이 일정을 취소했다.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진 홍보용 문화행사 초대권 배부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시행 후 일정 부분의 부작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농업 및 수산업의 피해가 크다. 이미 지난 추석명절 때 고가의 과일 및 생선 선물세트는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신생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소개하기 위한 기회 자체가 제한될 소지가 많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공무원 집단이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더욱 몸을 사리면서 새로운 기술·상품으로 무장한 신생업체 보다는 기존 거래 업체와의 거래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김영란법 시행 첫날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3건(서면 2건, 112신고 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 신고사례는 112로 익명의 제보자가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주는 장면을 봤다”고 신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제보자가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점을 감안해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신고자에게 서면신고를 하도록 안내한 뒤 종결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강원경찰청 소속 수사관이 이날 시가를 알 수 없는 떡 상자 한 개를 배달받자 즉시 청문감사관실에 서면으로 자진 신고했다.
신뢰사회의 구축과 정의사회 구현은 우리 국민 모두의 오랜 염원이다. 이 법이 정착되기까지 부작용과 혼란도 하나의 과정이며, 공정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감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명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참아내야 한다. 오늘 내딛는 첫걸음이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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