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할머니의 삶을 통해 본 인생의 의미
90세 할머니의 삶을 통해 본 인생의 의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9.30 14:20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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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할머니의 먼 집’

30대 감독, 조모와 살며 평범한 일상 담아… 잔잔한 감동

“성가싱께.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죽어야제. 다 죽어버렸당께.”
아흔 살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자살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는 그길로 곧바로 조모가 살고 있는 전남 화순으로 내려간다.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삶을 마감하겠다는 할머니를 만류하기 위해 손녀는 취업도 미룬 채 매달 일주일씩 할머니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단순히 함께 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냈다. 이소현 감독이 담아낸 박삼순 어르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30대 손녀와 90대 할머니의 아름다운 동행을 담은 영화 ‘할머니의 먼 집’이 개봉했다. 조모의 소소한 일상을 담는 손녀의 모습을 통해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수면제를 모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가까스로 살아난 박 어르신은 말로는 “올해는 꼭 죽어야지” 하면서도 혈기왕성하게 움직인다. 93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생선을 해동시키고, 집 앞 마당에 난 잡초를 뽑고, 방과 마당을 쓴다. “누워만 있으면 아프니께”라면서 끊임없이 소일거리를 찾는다.
이 감독은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담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귀가 잘 안 들리고 거동까지 불편한 할머니를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대하는 이 감독의 태도는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마치 어린 자식의 사랑스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아버지처럼, 이 감독은 할머니를 뒤따르며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기록한다. 무더운 한여름 방 안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는 할머니 곁에 함께 눕고, 동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는 등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족의 정을 불러일으킨다.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는 이 감독에게 “오늘은 너무 더우니까 내일 올라가라”고 말하거나, 귀경길에 가져가라며 고춧가루를 빻아다 손수 김치를 담그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손녀를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박 어르신은 손녀의 응원 덕에 활기를 되찾지만, 이 감독의 외삼촌이자 할머니의 첫째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또다시 급격히 무너진다. 슬픔에 빠진 할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던 막걸리를 매일같이 마시고, 기력이 없어 툭하면 넘어지고 피를 흘린다. 이를 바라보는 서울 가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는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가족 간 회의를 하는 장면, 할머니가 좀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몰래 영양제를 넣는 이 감독과 이를 만류하는 가족 간의 다툼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잔잔한 이야기 속 큰 화두를 던진 이 작품은 지난해 열린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오는 10월 열리는 ‘제9회 서울노인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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