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논란 … 소모적 공방보다 진상 규명이 우선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논란 … 소모적 공방보다 진상 규명이 우선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10.21 13:52
  • 호수 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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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정책 수장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최근 정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전에 노무현 정부가 북한 정권에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불씨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는 사실 때문인지 후폭풍이 더 거세진 형국이다.
송민순 전 장관은 2005년 1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데 이어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을 거쳤고, 2006년 12월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노무현 정부와 임기를 같이 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을 풀어놓았다. 쟁점이 된 내용은 지난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에서 한국 정부가 기권하기로 결정한 과정을 서술한 대목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7년 11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 하에 열린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는 자신과 기권을 지지하는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자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남북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김 원장의 견해를 수용,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 입장을 확인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로부터 이틀 후인 11월 20일 북한의 입장을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쪽지 하나를 전달 받았는데, 당시 북한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있는 입장을 취하길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송 전 장관은 전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면서도 “이렇게 물어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송 전 장관은 회고했다. 송 전 장관은 이에 앞서 자신이 노 대통령에게 결의안에 찬성해야 할 당위성을 적은 호소문 성격의 자필 편지를 보냈다고도 밝혔다.
현재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안보실장 등은 관련 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도 “11월 16일에 이미 노 전 대통령이 기권을 결정한 상태에서 북한에 ‘사후 통보’한 것”이라며 관련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북한인권단체들이 문 전 비서실장과 김 전 원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10월 18일 수사에 착수했다. 북한인권단체들은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 적힌 2007년 국제연합(UN) 북한인권결의안 결정 과정이 사실이라면 이는 반국가적인 행위”라며 문 전 대표 등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북한과 사실상 내통한 것”이라며 진상조사를 위한 특위 구성 등 총공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 관계에 철학이 없다. 이제는 다른 정치를 해야 한다”고 비판한 뒤 “노 전 대통령은 찬성 입장의 외교부와 기권 입장의 통일부 등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며 공방을 이어갔다.
회고록은 집필자의 기억과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송 전 장관은 수백 개의 메모를 퍼즐 맞추듯 맞춰가며 회고록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모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메모가 잘못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일수록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정치권 역시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여당은 사실이 확인도 되지 않았는데 ‘종북’이라며 비난부터 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당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또 그렇게 한다고 대단한 이득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입장 표명은 사실 관계가 확인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야당도 사안을 회피하려만 해선 안 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문 전 대표의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문 전 대표가 당시 상황을 명확히 밝힌다면 소모적 논란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방이 계속될 시에는 당시 청와대 회의록까지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제 여야는 공방을 잠시 접어두고 국익을 생각해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는 진상 규명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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