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담벼락 알록달록 장식하니 동네가 환해요”
“경로당 담벼락 알록달록 장식하니 동네가 환해요”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11.25 14:17
  • 호수 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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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산뜻한 옷입는 전국 경로당들
▲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진행중인 환경개선 사업을 계기로 전국 곳곳의 경로당들이 산뜻한 벽화 옷을 입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분회 경로당 오생규 회장이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작업한 경로당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 금성동 1통 경로당에 ‘이야기 지도 QR코드’ 벽화
서울 남가좌2동분회 경로당엔 민화… 화가·주민들 함께 작업

경로당 담벼락에 산뜻한 그림들이 수놓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진행중인 지역 환경개선 사업에 따라 밋밋했던 경로당 벽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것. 그간 경로당 벽화작업은 지자체가 민간단체와 연계해 실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여기에 마을주민부터 지역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까지 더해져 더욱 다채로운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다.
부산 금정구 금성동은 3개 마을(죽전·중리·공해)로 이뤄진 관광지다. 대표적인 관광자원은 금정산성. 금성동은 이 산성 아래 위치하고 있어 ‘산성마을’로 불린다. 하지만 요즘엔 관광객들에게 산성보다 오리고기 등 먹거리가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금정구는 지난 2월 부산시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뒤, 4개월 동안 금성동 3개 마을의 역사정보를 담은 ‘이야기 보물지도 QR코드’ 벽화를 조성했다.
금성동 1통 경로당 일원에 산성마을의 역사·문화 유적지, 향토 지명 등에 얽힌 그림들을 벽화로 새겼다. 마을 주민과 어린이들이 손수 그린 작품이다. 휴대전화로 벽화 위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마을 인터넷 블로그에 접속해 각 벽화에 얽힌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공동우물, 얼음골 석빙고, 누룩고개, 소원탑과 부부송, 용바위골, 기우제 바위, 가설극장 이야기, 동동구리무 할매집 등의 벽화들은 모두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진 것들이다.
금성동 1통 경로당 외벽엔 굽은 허리로 누룩을 밟고 있는 ‘누룩할매’가 담겼다.
이기숙 경로당 총무는 “산성마을의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누룩을 밟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누룩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경로당에 그려진 ‘누룩할매’는 마을 아낙네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정권 금성동 행복마을추진위원장은 “앞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문화해설사를 양성해 관광객 대상 역사·문화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분회 경로당은 지난 11월 9일부로 ‘민화를 품은 경로당’이 됐다. 올해 6월 서대문구의 ‘민화품은 전봇대 거리 만들기’ 사업을 주도한 노용식 화백이 이번엔 경로당 벽면에 민화를 입히기로 한 것.
노 화백과 명지대 동아리, 예일디자인고등학교 학생들, 지역 주민들이 구슬땀을 흘려 3일만에 벽화를 완성했다. 한복을 입고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등을 즐기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풍경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다. 동네 아이들의 낙서, 덕지덕지 부착된 광고지, 그 앞에 무단으로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앓던 속병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
오생규 남가좌2동분회 경로당 회장은 확 달라진 경로당 벽을 만족해했다. 오 회장은 “노용식 선생님과 주민들 덕분에 경로당의 분위기가 따뜻해져 회원들이 더 자주 경로당에 오고 싶다고 한다”며 “경로당 담 옆에 무단 주차하던 차량은 그림을 보곤 이제 감히 주차할 엄두를 못낸다”고 전했다.
남가좌2동분회의 사례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민간 주도 환경개선 사업의 좋은 예시다. 또한 경기 수원시 북수동경로당이 자리한 행궁동 벽화골목은 이러한 주민 자치형 환경개선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세계문화유산 ‘화성’ 인근에 위치한 행궁동은 이색적인 벽화거리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곳이다.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골목길들이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벽화들로 이어져 있어 유럽의 예술거리가 연상될 정도다.
이 화려한 골목길에서 북수동경로당 벽화도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하늘색 바탕에 잠자리가 각종 꽃들 사이를 휘젓는 모습이 경로당 외벽에 담겨 있는데, 경로당 어르신들이 직접 붓을 들고 채색한 작품이다.
사실 행궁동은 6년 전만해도 금방 허물어질 듯한 잿빛 담장과 수십년째 퇴락을 거듭해온 낡고 비좁은 골목길 일색이었다. 이렇게 황량했던 골목이 2010년을 기점으로 1년 만에 벽화거리로 재탄생했다.
지역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주민들, 4개국 14명의 외국 작가들까지 합심해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사업을 펼쳐나갔다. 오래된 골목의 가치를 되살리고, 화성을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업이었다.
그 무렵부터 북수동경로당을 시작으로 동네의 좁은 골목들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수원시는 울퉁불퉁했던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운치 있는 황톳길을 조성했다.
당시 벽화작업에 참여했던 김천수 어르신은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려고 저러나 의심부터 했는데,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고 해 동참했다”며 “지역사회를 위한 일에 합심했던 노인들은 이후 경로당 일에도 적극 나섰고, 2013년엔 모범경로당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궁동 벽화작업을 이끈 이윤숙 ‘대안공간 눈’ 대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문화공간을 조성코자 행궁동 벽화작업을 전개했다”며 “행궁동 벽화골목처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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