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고교졸업반 “늦다마라, 시작이 반이니”
늦깎이 고교졸업반 “늦다마라, 시작이 반이니”
  • 최은진 기자
  • 승인 2017.02.03 14:01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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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일성여고 ‘내 생각 말하기 대회’
▲ 1월 20일, 일성여고 ‘내 생각 말하기 대회’가 끝난 후 이선재 교장, 내빈, 참가 학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29세부터 75세까지… 졸업 후 당당히 대학 진학도

“40년만에 배움의 길로 돌아온 너무나 소중한 학교에요.”
지난 1월 20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제1회 내생각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학생들의 발표력을 기르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날 늦깎이 고3 학생 18명은 늦은 공부를 시작한 계기와 꿈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참가 학생들은 29세에서 75세까지 연령폭이 넓었다. 일성여중고교는 주로 만학도들이 다니는 학교로 수료자에게 정규학교 졸업과 동등한 학력을 부여하는 2년제 학력인정기관이다.
이 날 대회는 서남희(60) 학생의 ‘더 이상 거짓으로 학력을 기재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연으로 시작됐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 응우인티투이(29) 학생, 전교 회장으로 활약한 권정화(58) 학생 등이 저마다 감동적인 사연을 전했다.
◇“늦다마라, 시작이 반”=이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인 오후자(75) 어르신. 한복을 입고 발표한 오 어르신은 “미술협회 회원이 될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지만 학력이 중요한 미술협회 분위기에 주눅들었었다. 대학에 합격한 지금, 당당하게 미술협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어디서든 반딧불이처럼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도 공부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오 어르신은 “공부는 해도해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내가 알아야할 게 많은 것 같다. 하늘이 부르는 그 날까지 공부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지금 무엇이 가장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상쾌한 기분으로 등교했던 가파른 학교 언덕이 선하다”고 답변했다.
늦게라도 다시 공부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늦다 생각말고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도전하라”
◇‘40년 만에 펼치는 꿈’=이영화(70) 어르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백기에 TV 속 환호하는 중년 여성들을 봤다. 그때 가슴 속 배움에 대한 한이 나를 움직였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렇게 일성여중부터 시작했다”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형제에게 공부할 기회를 양보했지만 학구열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과 가정을 일구며 아내이자 다섯딸의 어머니,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 40여년을 살았다. 그녀의 헌신을 알기에 가족들은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고 자극받았다.
“조카는 공부하겠다는 저를 보며 37살에 대학에 진학했어요.”
남편은 매일 아침 자가용으로 등교를 함께했다. 학교에서는 배움에 여념이 없었고 동아리 활동에서 졸업 여행까지 학생으로서 열심을 다했다. 그럼에도 이영화 학생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것만 같다”며 아쉬워했다. “고등학교까지만 다니고 만족하려 했지만 학교의 권유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됐다. 실력으로 들어간 학교라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시상식 결과 권정화 학생이 대상, 응우인티투이 학생이 최우수상, 이영화 학생 등 3명이 우수상, 오후자 학생 등 13명은 장려상을 받았다.
최은진 기자
cej@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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