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위험 아시나요”
“부작용 위험 아시나요”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2.17 10:46
  • 호수 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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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아르바이트에 줄서는 어르신들

지난 2월 1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지하 1층에서는 어르신 수십 명이 몰려 길게 줄 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접수대에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은 임상시험 지원자들이었다. 약 30분 내외의 신체 계측, 혈압 측정, 혈액·소변 검사, 심전도 검사 등의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에는 의사로부터 임상시험 내용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참여 동의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앞으로 약 12주 동안 ‘골다공증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 최근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 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60대 이상 노인들의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아토피피부염 임상시험 지원을 모집하는 지하철 광고

신약 복용‧채혈 등 이뤄져… 2박3일 입원하면 수당 50만원
부작용 위험 알고 해야… 의료기관‧제약사 관리도 강화를

최근 들어 지하철이나 신문을 보다 보면 각종 임상시험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광고 하단에는 큰 글씨로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전문 의료진의 진료 및 소정의 교통비가 지급된다’고 적혀 있다.
대부분 만 19~80세 성인 지원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 대형 제약회사가 고혈압·고지혈 관련 의약품 임상시험을 시행한 결과, 지원자 304명 중 절반이 넘는 178명이 60대 이상이었다. 또한 서울의 한 병원이 진행했던 골다공증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에도 60대 이상 지원자는 66명 중 37명에 달했다.
◇고액의 수당 때문에 몰려
이처럼 노인들이 임상시험 아르바이트에 몰리는 것은 수당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하려는 의약품 특성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긴 하지만, 대개 병원에서 약을 투여 받으면 1회에 평균 4만~5만원, 2박3일 입원하면 평균 50만원을 받는다. 일주일 내내 입원하면 100만원 이상 받기도 한다.
현재 골다공증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어르신들은 기본적인 시험 관련 내용을 안내받은 뒤 항상 ‘교통비는 얼마냐’, ‘돈은 언제 통장에 입금되느냐’를 먼저 물어본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피험자로 참여하고 있는 정모 어르신(72)은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고 지원했다. 부작용이 두려운 게 사실이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요즘과 같이 추운 날씨에 폐지를 열심히 주워도 하루에 만원 벌기도 힘든데 그에 비하면 병도 고치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전했다.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 등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다. 일부 의약품은 동물 실험에서 효과를 보여도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본적인 신약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1상부터 효능과 부작용 등을 검증하는 3상까지 이뤄지는데, 보통의 건강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임상1상은 신약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약의 투여 용량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다. 통상 20~80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임상1상에서 신약의 안전성이 입증되면 신약의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해당 환자들(100~200명 내외)을 대상으로 임상2상이 이뤄진다. 신약 승인 직전에 이뤄지는 임상3상은 비교대조군을 설정해 보다 정확한 신약의 유효성을 측정하기 위해 실시된다.
◇임상시험 부작용 간과해선 안 돼
하지만 세상에 없던 약을 처음으로 사람에게 사용하는 임상시험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의 위험이 도사릴 수밖에 없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수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도 임상시험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약 개발 100건 중 90건 이상은 중도에 폐기될 정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2013년 임상시험 도중 중증 이상의 약물 반응을 보인 경우는 476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까지 이른 경우는 49건이었고, 생명 위협이 7건, 입원한 경우가 375건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혈압약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신모(70) 어르신은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현재 신 어르신의 양팔은 빨간 종기와 상처로 가득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지는 피부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심한 고통 때문에 바르고 먹는 약만 해도 10가지에 달한다.
신 어르신은 “임상시험에 지원했던 걸 후회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면서 “부작용에 대한 안내를 받긴 했지만 그때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임상시험 지원자의 안이한 태도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병원의 설명이 충분한지 판단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부작용은 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위험성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병원과 제약사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의 몸에서 약 성분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면서 “그러나 참가자들은 1~2개월 만에 또 다른 임상시험에 지원한다. 같은 병원 내에는 기록이 남지만, 다른 병원에는 기록이 공유되지 않아 지원에 문제가 없기 때문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병원 간 임상시험 기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의료기관에는 임상시험 부작용을 신속히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안명주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 외래진료도 1주일 마다 받게 하고, 제약회사 관계자와 연구자들과 매주 회의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며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면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에 따라 적절한 조치와 보상이 이뤄지고 피험자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움직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임상시험은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에게는 신약을 먼저 써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신약이기 때문에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밝혀지지 않아 두려움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번 20대 국회에서 임상시험에 예측 가능한 부작용이나 시험주체를 명시하자는 내용이 추가된 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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