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전 부총리 ‘한국 IT의 대부’
오명 전 부총리 ‘한국 IT의 대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2.17 14:03
  • 호수 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SNS에 열심히 글 올리세요”

40대에 체신부 장관…1년 걸리던 전화 개설 하루만에
‘4차 산업혁명’ 대비는 교육에서부터…인성교육 중요

오명(77)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한국 IT(정보통신)의 대부’라는 말을 듣는다. 그는 전화 신청 후 1년이 걸리던 전화 가설 서비스를 당일로 가능하게 했고, 행정전산망과 광케이블통신망을 구축해 국제사회가 부러워하는 ‘1등 전자정부’, ‘초고속 인터넷 1등 국가’를 실현하는데 기여했다.
또, 4명의 대통령 아래서 장관을 역임하는 등 초유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난 2월 중순,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만나 우리나라 IT 혁명의 뒷얘기와 정보화 사회에서의 노인의 역할 등을 들었다.

-미국보다 우리가 인터넷 속도가 빠른 게 체신부 덕분인가.
“우리나라가 제2차 산업 혁명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결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비참한 역사를 썼어요. 1970년대 정보화 물결이 들어오면서 ‘산업화에는 늦었지만 정보화에는 앞서 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당시 체신부가 주축이 돼 여러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1981~88년 체신부 장‧차관으로 재직한 그는 20년 앞을 내다보며 우리나라 정보사회의 마스터 플랜을 짰다. 먼저 전기통신공사와 데이터통신회사를 만들었고 통신망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전자교환기(TDX‧Time Division Exchange)를 개발했다. 우리나라 IT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됐다.
-TDX는 무언가.
“전화의 전자교환기에요.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로는 만들지 못해 외국 제품을 도입해 썼어요. 삼성‧LG가 컬러 TV도 잘 못 만들 때였지요. 정부가 240억원을 투입해 세계에서 7번째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 덕분에 당일 전화 개설 서비스가 가능했던 겁니다.”
-IT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한 것 같다.
“정보혁명 성공으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큰 혜택을 누립니다. 1년에 460억 달러 수출 흑자 중 IT 산업이 800억 달러가 넘어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거지요. 가장 중요한 점은 정보통신의 복지화입니다. 대도시나 시골, 섬 어디나 똑같은 수준의 IT 서비스를 받고 있어요.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 주부‧노인‧군인을 대상으로 컴퓨터 무료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어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보나.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앞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스개 소리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을 다 죽일 겁니다. 지구 멸망이 지구온난화 때문이고 온난화의 주범이 사람인지라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오 전 부총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운전기사‧변호사‧의사 등 현재의 직업 대부분이 사라진다. 10년 후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면 택시‧트럭기사가 필요 없다. 왓슨이 의사보다 진단을 더 정확히 내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교육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6‧3‧3‧4년으로 된 학제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졸업하고 나갔다가 직업이 없어지면 도로 학교로 와야 합니다. 평생 교육을 받아야 해요. 결국은 사람 교육을 먼저 하고 전문지식은 필요에 따라서 받는 식이 될 겁니다. 이런 예측이 무리가 아니에요. 실제로 80%였던 농업인구가 지금 6%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 바뀐 거지요.”

▲ 동아일보 회장 시절 오 명 전 부총리(오른쪽)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맞아 정보화 물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명 전 부총리는 육사를 나온 후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공학박사)을 졸업했다. 40세에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시작으로 고위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체신부 장관으로서 한국 정보통신 혁명의 기틀을 다졌다. 대전엑스포 조직위원장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교통부 장관‧건설교통부 장관 재직 시 고속철도 건설과 고속열차 개발을 이루어냈고 인천국제공항건설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학계, 언론계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아주대 총장, 건국대 총장, KAIST 이사장, 동아일보 회장 등을 역임했다. 벨지움‧포르투갈‧헝가리 훈장, 청조근정 훈장,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 뉴욕주립대 명예총장, 에스오일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있다.

-체신부 장관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우체국 여직원들의 유니폼이 죄수복처럼 시퍼렇고 볼품이 없었어요. 그런 옷을 입고 일하면 이미지도 안 좋고 자부심도 가질 수가 없지요. 적어도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처럼 디자인을 바꾸라고 지시했어요. 담당 국장이 새벽부터 예산실장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예산을 관철시킨 일이 생각납니다.”
-대전엑스포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미국‧소련 등을 회원으로 둔 세계 엑스포조직위에서 개최 허가를 내주지 않아 회원국들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오히려 미국은 반대했고 구소련이 우리를 적극 밀어줬어요.”
-4명의 대통령을 모셨다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서 장관, 부총리를 했고 DJ 정부로부터 교육부총리 제의가 있었지만 사양했어요. MB 정부에서 특사를 했으니 6명의 전직 대통령과 일을 한 셈이네요.”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대전엑스포를 잘 했다고 유성 주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오명 송가비’를 세워주었어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강당 이름이 ‘오명홀’입니다. 정부 건물에 개인 이름이 붙은 건 저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영광으로 압니다.”
-다양한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언가.
“아래로부터 존경받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밑에 사람 윽박질러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생각을 같이 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목표를 이루는 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노인 인구 급증 등 노인문제에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노인을 피부양자로 봐선 안 됩니다. 일을 주어야 해요.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반으로 확 낮춰 그 돈을 노인과 청년들에게 주고 이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면 생산성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저성장 문제도 해결되고요.”
-노인의 사회적 역할이라면.
“저에게 은퇴 시점을 물어본다면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할 겁니다. 현역으로 있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 거지요. 우리 나이가 얼마나 좋습니까. 경험과 지식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고 가족 부양에서 해방됐고 스트레스 받을 일 없고 하고 싶은 일 찾아서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자기가 경험한 일을 글로 남기세요. 책을 만들려면 돈이 드니까 글을 써서 컴퓨터에 저장하세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계속 글을 남기세요. 사회를 비판하는 글도 올리세요. 그러면 노인을 무시하지 않아요.”
-요즘 시국을 어떻게 보나.
“정치에 관해서는 노코멘트입니다만 여야가 합의를 잘 해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자진 사퇴가 바람직해요. 헌재가 (인용이나 기각이든) 어느 한쪽으로 결정을 내더라도 후폭풍이 대단할 것이고 나라는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질 겁니다.”
-요즘 어떤 일들을 하나.
“우리나라 IT가 이만큼 발전했는데 발전 과정이 제대로 정리가 안 돼 있어 그걸 책으로 쓰고 있고, 한편으로 스마트시티사업(미래도시건설)과 관련해 중국을 왕래하고 있어요.”
글‧사진=오현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