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사상최대 1344조원… 은행 대출 심사 강화에 제2금융권 몰려
가계부채 사상최대 1344조원… 은행 대출 심사 강화에 제2금융권 몰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2.24 14:46
  • 호수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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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1340조 원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민 1인당 가계부채가 2600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부채의 규모도 문제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증가 속도를 뛰어넘고 있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21일 발표한 ‘2016년 4분기 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신용 잔액은 1344조3000억 원으로, 2015년 말보다 141조2000억 원(11.7%) 늘었다. 그동안 추정만 됐던 가계부채 ‘1300조 원 시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부채 총액과 연간 증가액 모두 지난 2002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서 가계부채는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 금융권에서 받은 가계대출(1271조6000억 원)과 카드 빚 등 결제하기 전 카드 사용액(72조7000억 원)을 합한 것을 말한다. 이를 총인구수(5144만 명)로 나누면 국민 1인당 2613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업권별로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해진 반면, 금리가 높고 취약계층이 몰려 있는 제2금융권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상태다. 지난해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 비은행 예금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42조6000억 원으로 전년(22조4000억원) 대비 2배나 늘었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9.5%)를 뛰어넘는 속도다. 기타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보험사 또한 지난해 4분기에만 가계대출이 4조60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연간 증가액(9조8000억 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는 지난해 은행 대출심사를 강화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도입 등으로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한 자영업자나 서민층이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심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제2금융권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자인 취약 대출자가 많다. 이 같은 취약 대출자의 비중은 저축은행(32.3%), 카드·캐피털(15.8%), 보험(7.9%), 상호금융(6.5%) 등의 순으로 높다. 향후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면 이들 취약계층의 대출이 부실해져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도 문제다. 가계 부채 증가율은 2014년 6.5%, 2015년 10.9%에서 지난해엔 11.7%로 뛰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날 급히 ‘제2금융권 가계대출 간담회’를 소집하고 제2금융권을 밀착 점검하기로 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계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기관에 대해 현장 감독을 실시하고 미흡한 기관은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상반기(1∼6월) 중으로 각 상호금융권 중앙회와 함께 70개 상호금융조합 및 새마을금고에 대한 특별점검을 추진한다. 특히 지난해 4분기(10∼12월) 대출 증가폭이 컸던 보험사, 카드사 등에 대해서도 실태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가계 부채가 증가하다보니 소비심리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다. 한국은행의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7년 10개월 만의 최저치인 93.3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도 지난 2월 9일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2.3%로 전망하면서 ‘내수 부진’을 주요인으로 들었다.
이에 정부는 2월 23일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대적인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에 따르면, 매달 하루 금요일을 ‘가족과 함께하는 날’로 지정해 오후 4시에 퇴근토록 하고, 해외여행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호텔·콘도 객실요금을 인하하면 재산세를 깎아주기로 했다.
또한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기 위해 실업 때의 구직급여 상한액을 올리고, 생계급여 지원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에 대한 결손 처분, 학자금 대출 상환기간 유예, 교통·통신비 경감 대책 등도 담았다.
경차 유류세 환급 한도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확대되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음식점‧화훼업‧농축수산업 분야 소상공인에겐 800억 원 규모의 전용자금으로 저리 융자가 지원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물량을 집중 공급해 전세 값 상승을 억제하고 주택기금의 전세자금‧월세대출의 한도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효성이다. 쇼핑이나 레저를 즐기라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만 해도 기업들의 유연근무제 도입이 저조하고, 제 시간 퇴근조차 힘든 게 대다수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호텔·콘도의 재산세 인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없다면 시행이 어렵다. 저소득층 소득 확충계획도 빚에 눌려있는 상황에서 소비 증대로 이어지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소비 대책만 나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먼저 경기를 살리고 소득을 늘린 후에 소비 장려가 이어져야 구매력을 키울 수 있다. 기업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기를 살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또한 가계부채를 최악의 상태로 방치한 채 단기 대증요법만으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가계부채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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