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시행되면 정신질환자 4만명 퇴원 불가피”
“개정안 시행되면 정신질환자 4만명 퇴원 불가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3.03 13:05
  • 호수 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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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부터 시행되는 ‘정신보건법’ 개정안 문제없나?
▲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오는 5월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정신보건법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해 환자들에게 더욱 위해를 끼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강제입원의 부작용 막기 위해… 전문의 2인의 의견일치 요구
의사들 “입원 어렵게 하면 치료기회 놓쳐… 자해‧타해 위험성 커져”

지난해 4월 개봉된 영화 ‘날, 보러와요’는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돼 106일 동안 강제 약물 투여와 함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린 여주인공과 그녀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된 방송국 PD가 진실을 밝혀내는 내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보호자 2명과 정신과 전문의 1명의 동의만 있으면 언제든지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 시킬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보건법)은 타의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신질환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 조항을 악용해 가족 간 분쟁 해결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유린의 도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자가 중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장기 입원을 시켜야 된다는 사회적인 편견이 적지 않아서다. 강제 입원 환자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한 이유다.
정신질환 중 강제 입원으로 치료받는 질환은 크게 조울증, 조현병, 심한 우울증 등이다. 현재는 보호자 2명과 의사 1명이 동의하면 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또 환자가 퇴원하고 싶어도 보호자가 반대하면 계속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법 제정 20년 만에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오는 5월 30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환자의 인권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에는 △정신의료기관 등에서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받을만한 정도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정신질환자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을 때라는 요건 중 하나만 해당돼도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개정안에서는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강제입원 할 수 있다.
또한 2주 내에 국·공립병원 소속 전문의 등을 포함한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소견이 일치할 때에 강제 입원을 가능케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후 입원하는 환자는 2주 내에, 현재 입원 중인 환자는 1개월 내에 진단을 받아야 장기 입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을 막기 위해 도입되는 2인 진단 체계는 오히려 환자의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정신보건법’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국‧공립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입원 동의 순서를 기다리다가 결국 2주를 넘겨 환자들이 퇴원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 국‧공립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40명에 불과한데 비해 1년에 판정을 해야 하는 건수는 23만 건에 달한다”며 “이를 1일로 따지면 900건이다. 게다가 이들은 판정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도 병행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법 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민간병원 의사의 진단도 대가성 청탁이나 담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복지부는 입원진단이라는 중대한 업무를 당초 법 취지와는 달리 민간병원을 동원하자고 하는데 이는 법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제입원 요건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망상과 환청, 이상행동을 보여도 자신이나 남을 해치지 않으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증상이 미미한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호전될 수 있지만 개정안은 증상이 악화돼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면서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한 질환인데 조기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개정안이 시행되면 약 8만 여명의 정신질환 입원환자 중 약 절반가량인 4만 여명이 이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퇴원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퇴원한 정신질환자의 진료와 치료를 담당할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책조차 없다는 점이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대거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점이 제일 큰 문제”라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의료 인프라나 공공의료 인프라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질환자들까지 돌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의료계의 재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개정안 시행에 맞춰 관련 제도를 준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단 법률을 시행해보고 이 후 드러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국내 국‧공립의료기관은 약 3% 정도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민간의료 중심이기 때문에 국‧공립의료기관이 참여해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면서 “의료계가 문제점으로 제시하는 법적책임 문제 등은 법률 자문단을 구성해서 해결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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