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받으면 더 고생만 한다는 건 옛날 이야기”
“항암치료 받으면 더 고생만 한다는 건 옛날 이야기”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8.04 13:39
  • 호수 5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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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항암치료 필요 없을까
▲ 노인 암환자의 경우 항암치료가 힘들고 위험하다는 이유 등으로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보조 치료를 함께 시행하면 안전하게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 사진은 양성자치료기를 이용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모습.

경제적 부담, 부작용에 대한 걱정 등으로 치료 기피하는 경우 많아
노인에 맞는 약물과 보조치료 시행하면 안전하게 수술 받을 수 있어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낙(75) 어르신은 최근 병원에서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발견 당시 암이 간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의료진으로부터 항암치료 후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 어르신은 경제적인 부담,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등으로 인해 치료를 거부하고 통증치료만 받고 있는 상태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로 지목되고 있는 암은 매년 환자수가 증가하면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14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평균 기대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이다. 즉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린다는 분석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암유병자는 60만2720명으로, 전체 노인인구의 9.6%에 달했다.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암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에서의 암 유병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 20~30년 동안 많은 치료법과 약제의 발전으로 암 관련 사망률이나 치료 반응률 등 각종 암 관련 지표들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인 암환자, 항암치료 기피 이유
그러나 노인들의 경우, 암이 발병되면 김 어르신처럼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생하는 것보다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사는 동안 고통 없이 살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의 이유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암의 병기가 진행된 상태일수록 분명하게 나타난다. 수술이 가능한 초기의 경우 수술을 통해 완치를 얻고자 하는 노인 환자들이 있는 반면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암환자의 경우 항암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통증치료나 합병증에 대한 대증치료만 받으면서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노인 환자들이 암 치료를 기피하는 배경에는 △자녀들과 떨어져 살면서 가족 구성원이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자 밖에 없거나 사별해 혼자 지내는 경우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것이 염려되는 경우 등의 사회‧경제적인 측면이 많다.
이밖에도 △항암치료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 △동반된 만성질환으로 항암치료가 어려운 점 △노인의 경우 암이 천천히 자라서 치료가 필요 없다는 잘못된 의학상식 △대체의학만으로 자가 치료를 하는 경우 △기력저하로 인한 항암치료의 어려움 등이 있다.
그렇다면 정말 노인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는 필요가 없을까? 일단 노화에 따른 신체, 정신적 컨디션 변화로 인해 독성반응에 취약하고 고혈압, 당뇨병 등 동반되는 만성질환의 수가 많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일반인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유영진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노인 항암치료가 젊은 사람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보다 신체적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노인은 골수생성 기능이 감소하기 때문에 항암제 치료 후 골수억제가 더 심하게 생겨 면역력이 더 심하게 감소될 수 있다. 암 진단 전부터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질병이 있어 그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에도 항암치료를 받으면 이런 질병들이 더 악화된다.

◇노인환자에서의 항암치료
그러나 노인에게 좀 더 적합한 약물을 선택하거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여러 보조 치료들을 시행하면 노인 암환자들도 안전하게 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지현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최근에는 항암치료 후 면역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감염증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백혈구 촉진제들이 개발돼 과거보다 안전하게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며 “수술의 경우도 미리 준비했다면 노인이라고 해서 위험이 많이 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병을 방치하다가 응급 수술을 시행하게 되면 합병증의 빈도는 급격히 상승한다”고 말했다.
항암치료에 잘 견딜지 여부는 신체적인 나이가 결정한다. 이는 노인이어도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왔고, 튼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 실제 나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항암제 부작용이 걱정인 노인들의 경우, 항암제 용량을 줄이면 별다른 부작용 없이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효과는 조금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영진 교수는 “폐암에 걸린 노인 가운데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들과 증상완화 치료만 받은 사람들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이 받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기간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삶의 질도 더 좋았다”면서 “항암제 치료를 받았더니 고생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이 더 고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므로 노인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한다거나 항암치료를 받으면 더 빨리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걱정과 선입견은 버려져야 한다. 단순히 주변의 이야기를 본인에게 적용해 자의로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현 교수는 “암 치료를 받을지 말지는 어르신 환자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일부의 경우 자녀들이 부모님께 암 발병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깊은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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