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들 ‘15분 진료’ 신선한 실험
대학병원들 ‘15분 진료’ 신선한 실험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8.11 10:50
  • 호수 5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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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대기시간에 ‘3분 진료’… 서울대병원 등 개선 나서

전라남도 고흥에 사는 박복자(72) 어르신은 지난 6월 허리 통증이 극심해져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약을 지어 복용했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에 밤잠까지 못 이룬 지 몇 주째 되자 자식들은 박 어르신을 서울에 모셔와 예약한 대학병원에 데려갔고, 한 시간 가량 대기 끝에 정형외과 의사를 만났지만 진료 시간은 고작 1~2분에 불과했다.

▲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기존 ‘3분 진료’ 관행을 깨고 ‘15분 진료’를 시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환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병원 창구에서 진료접수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복지부 “9월 심층진료수가 도입”… 환자들은 반색

‘3분 진료’란 말이 있다. 긴 대기시간에 비해 환자 한 명당 할당된 진료 시간이 너무 짧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생긴 말이다. 3분 진료에 대한 문제는 그동안 의료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외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종합병원의 초진환자 1인당 평균 진료시간은 6.2분이다. 반면, 환자들은 최소 8.9분으로 늘어나야 진료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의 초진환자 1인당 평균 진료시간(7.4분)보다 짧은 수치이다. 특히 이중 서울대병원의 진료시간은 불과 4.3분으로 국립대 병원 가운데 최단 시간 환자를 진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진환자는 해당 질환으로 진료 의사와 처음 만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진환자는 본인의 증상을 가급적 자세히 의사에게 설명해야 하고, 의사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환자들은 진료시간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약 6000원을 추가 부담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체 응답자 중 62.3%(381명)가 자신이 만족하는 진료시간을 위해 본인부담금을 평균 5853원 더 지급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만족하는 진료시간이 길수록 지불 가능 금액은 증가했다.
이러한 가운데, 기존 3분 진료를 과감히 탈피하고 초진환자를 대상으로 적어도 15분 이상의 진찰 시간을 갖고자 하는 움직임이 병원계에 퍼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대병원이다.
서울대병원은 오는 9월부터 1년 간 시범사업 형태로 호흡기내과, 신경외과, 피부과 등 11개의 진료과 초진환자들을 중심으로 15분 진료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지난 2015년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가 시도한 ‘3분 진료 깨기’의 확장인 셈이다.
그동안 임재준 교수는 월, 수요일에는 기존 외래 진료를 하고, 목요일 오후엔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진료를 했다. 임 교수는 “환자를 철저하게 보지 못했다는 느낌, 심지어 환자들이 하는 말을 끊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한 자괴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기계적인 의사가 아닌 15분 동안만이라도 환자와 대화하면서 진찰하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진짜 의사로 반나절을 보내는 경험을 하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15분 진료에 참여하는 교수는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 △내분비내과 김정희 교수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 △신경외과 김용휘‧김치헌 교수 △소아정형외과 조태준 교수 △소아청소년과·심장 김기범 교수 △소아청소년과·신경 채종희 교수 △소아청소년과·신장 하일수 교수 △유방외과 문형곤 교수 △피부과 정진호 교수 △산부인과 김석현 교수 등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를 대상으로 퇴원 후 외래진료 시 15분 이상 진료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중환자클리닉에서는 환자와 가족에게 중환자실에서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예방적 치료가 가능한 부분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신체·기능적 손상의 발생 여부를 체크해 예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이연주 호흡기내과 교수는 “15분 진료는 환자나 의사 모두를 위해 충분한 진료시간이 필요해 시작한 것”이라면서 “짧은 진료시간은 환자에게도 불만이지만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감과 집중력을 저하시켜 의료진들에게도 불만족스러운 진료시간이다. 그러나 충분한 진료시간을 제공하면 환자와 보호자, 의사 사이의 신뢰가 두터워져 예후도 더 좋다”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 심장클리닉도 초진 환자에게 진료시간을 최대 15분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이는 그동안 진료 예약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쫓기듯 진료를 봐야 했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의료혁신”이라면서 “환자 중심의 진료환경을 구현하고 새로운 진료 문화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병원계가 이렇게 진료시간 확충 의사를 밝히자 정부도 ‘심층진료수가’를 개발해 늘어나는 진료시간으로 인한 병원 손실을 일부 보존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3분 진료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2∼3개 병원을 대상으로 심층진료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복지부는 대부분 대형 대학병원으로 이뤄진 상급종합병원의 15분 진료 수가를 초진 기준으로 현재 2만4040원의 최고 4.2배인 9만∼10만원으로 책정할 방침이다. 시범사업 기간에는 환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수가와 새 제도 차액의 5∼10% 정도만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환자 본인부담액은 2만7340원∼3만1640원 가량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심층진료는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중증환자나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먼저 적용하며,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못 하거나 치료하기 힘들다고 의뢰한 초진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복지부는 이같은 방침을 9월 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해 의결한 뒤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환자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8월 7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정낙현(63)씨는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 내 몸 상태에 자세히 설명하면 의사들은 ‘알겠습니다. 됐어요’라며 말을 끊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뒤에서야 며칠 동안 궁금해 꼭 물어보고 싶었던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15분 진료가 도입된다면 눈치를 안 보고 평소에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맘껏 물어볼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진료실에서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되고, 환자 경험을 잘 청취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환자와 의사는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되고 불필요한 치료와 검사도 줄게 될 것”이라며 “진료시간과 환자경험이 환자의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진행돼야 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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