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농가 계속 늘어… 축산 위생 등 사육 환경 근본적 변화 필요
‘살충제 계란’ 농가 계속 늘어… 축산 위생 등 사육 환경 근본적 변화 필요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8.18 13:24
  • 호수 5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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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른바 ‘친환경’ 상표를 내건 산란계(계란 낳는 닭) 농가들이 실제로는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대거 살포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친환경’ 표시만 믿고 비싼 값을 지불해 온 소비자의 분노와 배신감이 증폭되고 있다.
8월 17일 오전 5시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경기 남양주, 경기 광주, 경기 양주, 전북 순창, 강원 철원, 전남 나주 등 29곳의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현재 조사 대상인 전국 1456개 산란계 농가 86%에 대해 조사가 끝난 상태이며, 남은 산란계 농가에 대한 조사는 17일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정부는 조사 대상인 전국 산란계 농가 중 1차로 사육규모가 큰 243곳에 대해 조사했고 16일까지는 약 870곳의 소규모 농장에 대한 조사를 끝냈다. 1차 조사 대상인 농가들은 사육규모가 큰 대규모 농가 위주였지만 2차 조사 대상 농가들은 대부분 소규모 농가들이다.
이번에 적발된 29개 농가 가운데 유럽에서부터 문제가 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계란에서 검출된 농가는 7곳이다. 19개 농가의 계란에서는 닭 진드기 박멸용 살충제인 ‘비펜트린’이 검출됐고, 3개 농가에서는 ‘플루페녹수론’ 등 다른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이에 따라 고위 당·정·청 합동회의에서는 기준치 초과 여부와 관계없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모든 계란을 회수해 폐기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살충제 계란을 사용한 가공식품도 전량 수거해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사태 발생 이틀 만에 해결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살충제에 오염돼 ‘살충제 계란’을 낳은 산란계가 식용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보통 산란계가 늙어 더 이상 알을 낳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노계’로 분류해 식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살충제 오염 가능성이 있는 산란계가 사용된 가공식품은 확인하는 대로 전량 수거·폐기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피프로닐 등 살충제가 나온 농장의 산란계를 살처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사태를 범정부적으로 종합 관리하라”면서 “현재 진행 중인 전수 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살충제 계란’ 파문에서 정부는 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유럽에서 한 달여 전 ‘살충제 계란’이 발견돼 큰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지난 8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산 닭과 계란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가 이번 사태가 불거져 국민을 속였다는 논란이 일었다.
계란에 대한 국내 잔류농약 기준이 없는 점도 문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진드기 퇴치용 살충제 ‘피프로닐’의 경우 닭에는 사용이 아예 금지되지만, 계란에는 별도의 기준이 없다. 그래서 국제 식품 농약잔류 허용 기준인 코덱스(CODEX)의 계란 검출 기준치(0.02mg/kg)를 따른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소나 돼지, 닭 등 육류는 도축 후 고기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잔류 항생제 등 약물 조사를 벌이지만 계란은 농장에서 바로 완제품으로 포장돼 시중에 유통되는 구조여서 이렇다 할 사전 검사가 없기 때문이다. 농장주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양계장들이 그동안 친환경인증 마크를 붙이고 살충제를 사용했으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사실도 이번에 드러났다. 이는 국민 식품인 달걀의 안전성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됐는지 보여준다.
이에 따라 유기농, 무농약, 무항생제, 유기식품, 활성처리제비사용 등 관련 부처가 내주는 친환경인증 표시가 전 과정에서 제대로 점검된 뒤 발급되고 있는지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몇 차례 경험에서 보듯 먹거리 불신은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국민적 불안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어서다.
사육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좁은 닭장에 가둬 닭을 키우는 한 진드기 감염 등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진드기를 막겠다고 닭에 농약을 뿌렸다가 달걀이 살충제에 오염되면서 일어났다. 밀집사육을 바꾸지 않는 한 진드기 발생과 살충제 소동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동물복지와 축산 위생을 포함해 사육환경 전반을 살펴야 할 것이다. 사육환경 개선은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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