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싸맬 때도 견고하면서 격조 넘쳤다
책 한 권을 싸맬 때도 견고하면서 격조 넘쳤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9.01 13:47
  • 호수 58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왕실의 포장예술’ 전으로 본 전통 포장문화
▲ 조선왕실은 포장을 전담하는 상의원이란 관청을 두고 상방정례라는 규례서를 작성해 절차를 엄격히 기록할 정도로 포장문화에 공을 들여왔다. 사진은 ‘현종비 효현황후 왕비책봉 교명과 봉과물품’의 모습

상의원이란 관청 통해 포장 맡겨… 용도에 맞게 방법도 달라
‘상방정례’ 통해 절차 꼼꼼히 기록… 보자기와 상자 주로 이용

조선왕실에는 상의원(尙衣院)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동명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곳의 주임무는 임금과 왕비의 의복을 만드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궁내의 재화‧금‧보화 등도 관리했다. 그리고 이곳의 또 하나의 주요한 임무가 포장(包藏)이었다. 특히 ‘상방정례’라는 규례서에 포장절차를 기록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런 조선왕조에서 전해오던 포장예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다. 9월 3일까지 진행된 ‘조선왕실의 포장예술’ 전에서는 주연인 내용물을 빛나게 해주었던 조연이면서도 주연 못지않게 품위 있고 아름다운 조선왕실의 다양한 포장 용품과 그 문화에 대해 소개했다.
조선왕실에서는 일상생활과 의례에서 소용되는 여러 가지 물건을 제작하고 관리했는데 이를 용도에 맞게 포장해 사용하는 데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포장은 단순한 외피(外皮)가 아닌 내용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실에서 행해진 포장은 그 격에 맞도록 민간과 구분되는 색과 재질로 이루어졌다.

▲ ‘중종 국조보감과 봉과물품’

그 내용물만큼이나 포장에 사용되는 각종 용품 또한 최상품을 사용해 격식과 용도에 맞게 세심하게 제작했다. 여기에는 물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내용물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며 정성과 품격, 더 나아가 왕실의 위엄이 깃들었다. 특히, 각종 중요한 국가의례에서 사용되는 물품의 포장은 ‘봉과(封裹)’라 해 의식절차로서 엄격하게 진행됐다.
포장에는 주로 보자기와 상자를 사용했다. 보자기는 직물 한 겹으로만 이루어진 홑보자기, 두 겹으로 이루어진 겹보자기, 두 겹 직물 가운데 솜을 넣은 솜보자기, 솜보자기를 겉에서 누빈 누비보자기, 기름종이를 직물에 부착한 맛보자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보자기는 각종 무늬가 직조된 비단에서부터 마·면·종이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제작됐고, 보자기의 안감,겉감과 끈에 홍색·청색·자색·황색 등 다양한 색을 대비시켜 장식 효과를 냈다.
물건을 담는 상자는 내용물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맞춤 제작하거나, 내부에 내용물의 흔들림을 방지하는 고정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또 내용물을 상자에 담고 다시 보자기로 싸서 오염을 방지하고 운반하기 쉽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 등에게 존호(덕을 기리며 바치는 칭호)나 시호(죽은 뒤에 행적에 따라 추증하는 칭호) 등을 올릴 때 옥 조각에 그 내용을 새긴 후 첩(貼)으로 엮은 ‘옥책’(玉冊)이 대표적이다. 옥책 한 첩은 옥 조각 5~7쪽으로 이뤄져 있는데 첩수는 적게는 2개, 많게는 18개였고 차곡차곡 포개서 보관했다.
옥책은 옥 특유의 무게 때문에 여러 장의 판을 연결했을 때 손상의 우려가 컸다. 파손을 막기 위해 판과 판 사이에 마찰을 방지하는 작은 솜 보자기인 ‘격유보’를 만들어 넣었다. 모두 접은 뒤에는 갑(匣)에 넣었다. 갑은 다시 붉은색 칠을 한 내함(內函)에 들어갔고, 내함은 흑칠을 한 외궤(外櫃)에 집어넣어 보관했다.
이때 갑·내함·외궤 역시 각각의 보자기를 통해 감싸졌다. 안전한 보관과 화려한 장식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의례용 인장인 보인(寶印), 왕비·왕세자 등을 책봉하던 임금의 명령서인 교명(敎命)도 옥책과 비슷하게 포장을 겹겹이 해 보관했다.
전시에서는 이런 옥책 및 내함, 외궤와 함께 격유보도 보존처리를 거쳐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포장 방법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정순왕후를 왕비로 책봉한 후 만든 어보와 어보를 싼 보자기, 그리고 이 어보를 넣은 함과 그 함을 싼 보자기로 구성된 봉과물품도 함께 선보였다.
영친왕비의 장신구들을 포장했던 보자기와 상자도 인상적이었다.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진 장신구는 장방형의 보자기에 싸서 비단으로 장식된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비녀의 경우 비녀베개로 고정했고, 족두리는 비단방석을 넣어 포장했다. 의례에 사용한 규(면복을 착용하고 마지막으로 손에 드는 의물, 옥으로 제작)는 비단 주머니 내에 단추로 잠가 보관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영친왕비의 물품들은 1996년 일본에서 반환된 것이다.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가 기일에 입는 복식에 대해 궁체로 쓴 책과 이 책을 담은 상자, 잘 포장된 혼례품을 운반하는 장면을 묘사한 의궤, 신정왕후(1808∼1890)의 팔순을 기념해 열린 잔치를 그린 정해진찬도 병풍도 볼 수 있다.
지하에 마련된 기획전시실에서는 현대 공예작가 24명이 조선왕실의 포장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미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