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어가길’, 무엇이 문제인가?
‘순종어가길’, 무엇이 문제인가?
  • 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7.10.13 13:23
  • 호수 5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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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1909년 순종이 대구에 간 것은
반일감정 누르기 위해 강요된 것
이런 역사적 사실 망각하고
거액 들여 ‘어가길’ 복원하고
동상까지 세우다니 기가 막혀

2017년 8월 29일은 국치(國恥) 10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완전멸망 직전의 썩은 왕조 대한제국이 침략국 일본제국에게 나라의 주권을 넘겨준 합병조약(合倂條約)이 이뤄진 날이지요. 100년 세월이 넘었지만 그날의 치욕은 우리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흉한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이날 오전 11시, 대구 달성공원 앞에서는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구 중구청(청장 윤순영) 주관으로 국비 70억원을 쏟아 부어 조성한 총 연장 1km에 달하는 이른바 ‘순종어가길’, 그 최종적 지점에 세워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純宗, 1874~1926)의 11m 동상에 대해서 즉각 철거를 요구하는 양심적 시민들과 24개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순종어가길’ 조성에 대한 비판 및 규탄이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엄정하게 구분해서 집행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무심하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오히려 황급히 서두르는 괴기적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순종어가길 조성’과 순종동상의 건립입니다.
1909년 1월,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적 요청으로 이른바 남서순행(南西巡幸)을 떠나게 됩니다. 이토는 당시 일제가 조선에 설치한 침략기관 통감부의 초대 통감으로 그 위세가 한 나라의 왕을 압도하고 있었지요. 이토는 총리대신이었던 매국노 이완용을 불러 순종에게 남서순행을 위한 출발준비를 통보합니다. 순행의 목적은 전국적으로 끓어오르던 반일감정을 잠재우려는 의도와 여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순종은 화려하게 장식된 궁정열차를 타고 떠나 대구, 부산, 마산, 대구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순행 코스를 다녀오게 됩니다. 이처럼 당시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경부선으로 대구역에 도착한 순종과 그 일행은 대구 군수로 가 있던 친일매국노 박중양과 그 일파들, 대구에 주둔하던 일본군 헌병대장, 경찰서장, 일본거류민단 대표 등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그들과 악수하며 격려합니다. 그리곤 가마를 타고 북성로 일본인 거리와 수창동을 지나 달성토성(현 달성공원)까지 갑니다. 이 순종행차 때문에 길가의 많은 민가들이 돌연히 철거됐고, 확장된 도로 위에는 흰 모래를 깔았습니다.
달성토성에는 1906년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그들의 왕 메이지(明治)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이해서 그 기념으로 세운 황대신궁 요배전이 있었지요. 순종은 그 요배전 앞에 가서 90도로 허리 숙여 절을 했습니다. 순종이 직접 찾아가서 참배한 곳은 사실상 일본의 신사였던 것입니다. 그리곤 곧바로 대구역으로 가서 부산, 마산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구에서 하루 묵으며 대구권번의 기생연회를 구경합니다. 바로 이 경과가 망국 직전, 가련한 왕 순종의 모든 발자취인데요. 이를 ‘순종어가길’이란 말로 윤색하고 미화시킨 다음 70억원이라는 막대한 국비로 복원했다고 하니 참으로 억장이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 수치스런 사업에 참여한 어느 누구도 반역사적 반민족적 흠결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더욱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어찌 제 정신을 갖춘 사람이 그리도 없었던 것일까요? 이런 비통한 슬픔이 바탕에 흥건히 깔려있는 순종 남서순행을 무슨 대단히 자랑스러운 역사적 자료라도 되는 듯 복원, 혹은 재현이란 명분으로 조성한 대구 중구청은 마땅히 호된 비판과 꾸중을 들어야 합니다. 민심을 역행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만행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그 무지와 둔감에 너무도 가슴이 따갑고 아픕니다.
순종동상 앞에는 왕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용상까지 구리로 제작해서 앉혔습니다. 그 앞으로는 매우 길게 경부선철도를 떠올리게 하는 설치물을 조성했습니다. 이른바 한반도 근대화의 상징인 듯 말이지요. 경부선은 일제가 침략과 수탈의 발판으로 만든 교통로였던 사실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 밑그림을 그린 기획자는 경부철도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매우 유익한 시설이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적 관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암울했던 시대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정신을 담아내고자 이곳에 순종동상을 세운다’는 취지 설명의 대목입니다. 대체 이 무슨 넋 나간 억지요 망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순종동상과 민족정신은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세워선 안 되는 이런 얼빠진 조형물을 건립함으로써 대구란 지역이 얼마나 한심하고, 역사의식이 부재하며,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낙후한 곳인가를 대구중구청이 솔선해서 만천하에 드러내고만 결과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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