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도’ 주창하는 유동식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인은 가무 즐기는 ‘풍류도인’…싸이는 말춤으로 세계 정복한 셈”
‘풍류도’ 주창하는 유동식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인은 가무 즐기는 ‘풍류도인’…싸이는 말춤으로 세계 정복한 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0.23 09:26
  • 호수 59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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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는 기숙사 선배… 사교성 없던 그와 눈인사만
100세 가까이 산 건 과분한 축복… 인생은 머물다 가는 나그네 길”

백수를 눈앞에 둔 신학자 유동식(95)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은 놀랍다. 그는 싸이의 ‘말춤’ 유튜브 조회 수가 24억 회라고 소개하고는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하려다 좌절했지만 싸이는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한 셈”이라며 “한국인은 피 속에 풍류가 흐르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라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풍류도, 한국인은 누구인가’란 주제로 외부강연을 나섰던 유 교수를 서울 대신동 자택에서 만나 노인과 종교, 삶의 의미 등을 물었다.

-건강은 어떠신가.
“하루하루가 달라요. 이 나이에 살아 있는 것만도 과분한 축복을 받은 겁니다.”
-젊었을 적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나.
“물론 몰랐지요. 우리 집안이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어요. 다들 환갑 지나면 돌아갔어요.”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강연을 해오고 있다. 과연 누구인가.
“한국인은 한 마디로 ‘풍류도인’이에요. 하나님이 각 민족에게 주신 특성이 있는데 우리가 그걸 자각하고 거기에 입각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인의 풍류 기원은 고대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상들은 10월에 하늘에 대해 제사 지내며 며칠씩 노래하고 춤추고 했다. 이게 풍류라는 것이다. 6세기 삼국시대에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할 목적으로 풍월도를 성하게 했다. 풍월도는 제천의식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풍월도를 지내는 청년들을 ‘화랑’이라고 했다.

화랑도의 3대 교과목이 ▷도의로써 진리와 윤리를 연마하고 ▷노래와 춤을 통해 서로 즐기게 하고 ▷명산대첩을 찾아 놀게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화랑도가 바로 풍류이며 풍류가 우리 민족과 합해져 이상적인 인격을 만들었다”며 “삼국을 통일한 화랑도정신이 통일신라-고려-조선왕조-대한민국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서 “9세기에 당에 유학 가서 유‧불‧도를 통달하고 과거 급제해 관리직을 맡다 돌아온 한국의 천재소년 최치원은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가 독특한 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며 “최치원이 한 화랑의 비문에 ‘우리나라의 깊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이것을 풍류도라고 한다’라고 썼다”고 소개했다.

유 교수는 황해도 평산 남천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 진학했다. 이때 시인 윤동주와 함께 기숙생활을 했다.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 도쿄의 동부신학교에 들어갔다. 이듬해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해방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6‧25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신학‧종교학 분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감리교신학대, 연세대 종교학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종교와 기독교’‧‘민속종교와 한국문화’‧‘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등이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면.
“해방을 맞은 겁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가고시마의 부대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기가 없었던 일본군은 해안가에 구덩이를 파고 포탄을 안고 숨어있다 미군 장갑차가 지나가면 포탄과 함께 자결하려고 했어요. 죽음 속에서 움직이다가 하루아침에 ‘무조건 항복’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살아난 겁니다. 나는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컸어요. 어려서 세례를 받아 구원이라는 걸 몰랐는데 이때 구원을 받은 거지요.”

유 교수는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덕분에 우리 민족이 해방 된 것”이라며 “원자폭탄을 쥐고 있는 이의 선함과 악함에 따라 해방될 수도, 모두 죽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핵이 골치 아프다.
“핵을 쥐고 있는 자의 정신이 문제입니다.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북한은 모든 종교인들을 다 없애고 독재자가 신이 됐어요. 마치 애굽 왕이 신처럼 행세하며 피라미드 안에 미이라를 만들었듯이 북은 김일성 미이라를 만들어놓고 김정은이 신이 돼 버린 거예요. 종교적으로 보면 지금이 위기 중 위기에요.”
-윤동주 시인과 기숙생활을 함께 했다고.
“나는 신입생이었고 그이는 4학년이었으니 서로 얼굴만 알 뿐이었어요. 우연히 기숙사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를 나누곤 했어요. 그이는 사교성이 없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그이가 시인이고 크리스천이라는 사실도 몰랐어요. 크리스천 모임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시인 윤동주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탄생 100주년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요.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민족적 투쟁을 한 훌륭한 분입니다.”
-100세 가까운 삶…인생에 대한 감회가 다를 것 같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우리 국적은 하늘에 있고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가 부르시는 날 돌아가는 겁니다. 팔순에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시 아닌 시 한 구절을 적은 게 있어요. 내 삶을 돌아보면서 제목을 ‘하늘나그네’라고 했어요. ‘고향을 그리며/ 바람 따라 흐르다가/ 아버지를 만났으니/ 여기가 고향이라/ 하늘 저편 가더라도/ 거기 또한 여기거늘/ 새봄을 노래하며/ 사랑하며 살으리라.”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신학은 크게 두 줄기가 있어요. 하나는 성경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겁니다. 그걸 ‘신신학’이라고도 해요. 나는 성서해석을 했는데 요한복음을 전공했어요.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라는 신학자의 연구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유 교수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의 개념으로 성서의 진리를 해석하자는 생각에서 시도한 게 풍류도”라며 “우리의 문화, 예술, 종교가 모두 거기에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신학을 전공한 계기는.
“열등의식 때문이었어요.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느꼈던 민족적 열등감,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또 다시 느꼈던 문화적 열등감, 이걸 극복하려고 신학과 한국학을 공부한 겁니다.”
-노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성경입니다. 그냥 읽으면 안 되고 누가 설명을 해주어야 해요.”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신앙심을 가져야 해요. 내가 이 땅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닙니다. 하늘에서 보내줘서 이 세상에 온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어떻게 하는 건 잘못입니다. 하늘이 부를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야 해요.”
-100세시대 노인의 역할이라면.
“사회에 폐해를 주지 말고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에요. 능력으로 볼 때 우리가 지금 돈벌이를 할 때인가요. 남에게 폐만 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를 향해서 삶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그건 종교적 신앙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노인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주일학교와 경로당 역할을 교회가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걸 복음의 빛에 비추어 가르쳐야 합니다. 따로 경로당을 더 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대한노인회에서 ‘1노1종교’란 슬로건을 앞세우고 경로당과 교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어린이도 어릴 적에 의식을 불어넣어주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삶의 의미란 무언가.
“그것이 풍류도와 연결됩니다. 아름다움… 멋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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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0-24 01:33:48
인간이 하는 행위는 종교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거의 모두가 종교행위에 해당된다. 확인된 것만 믿는 것을 과학이라고 말하고 확인되지 않은 것을 믿으면 종교에 해당된다. 그런데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이 가진 지식은 많은 부분이 진실이 아니지만 오해나 세뇌를 통해서 얻어진 정보가 점점 진실처럼 믿겨지면서 일종의 신앙이 만들어진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