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왜 ‘미슐랭 별’을 못 받는가
비빔밥은 왜 ‘미슐랭 별’을 못 받는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1.03 14:14
  • 호수 5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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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음식 비빔밥으로 별 못 따다니 안타까워

일본 도쿄의 스가모역에 미슐랭 별을 딴 라멘집이 있다. ‘쓰타’(담쟁이덩굴)라는 이름의 이 집 라멘 육수는 와카야마현 삼나무 통에서 2년 숙성한 간장 등 3종류의 간장을 혼합해서 만들었다. 거기에 명품 토종닭 3종에 조개‧다시마‧야채 등으로 풍미를 더했다. 그 위에 최고급 이탈리아산 송로버섯 오일을 뿌렸다. 일본 라멘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챠슈’라는 돼지고기 절편은 레드와인에 절인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쓴다. 역시 밀가루 명가의 제품으로 반죽한 면도 탄력과 점도가 적당하다. 반숙계란은 아오모리 토종닭의 유정란을 쓴다.

이 라멘을 개발한 식당주인 오니시 유키는 ‘생애 라멘과의 단판 승부’를 내 승리를 한 셈이다. 오니시는 ‘라멘이야말로 일본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신념으로 의류회사를 나와 5년 전 이 식당을 차렸다(동아일보 장재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얼까. 오니시의 라멘처럼 미슐랭 별을 수도 없이 받을 수 있는 메뉴는 비빔밥이 틀림없다. 비빔밥은 맛이나 향, 모양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메뉴를 찾기 힘든 특별한 건강식인데도 불구하고 미슐랭 별과는 인연이 없다. 물론 미슐랭 서울편에 소개된 한식당들은 많다. 하지만 비빔밥만으로 미슐랭 별을 딴 식당은 아직 없다.

비빔밥은 색과 맛, 계절과 지역,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 조화와 융합을 이룬 음식이다. 흰밥 위에 갖가지 나물과 고기볶음, 튀각, 달걀 등을 올려 비벼 먹는 비빔밥은 우리와 외국인 모두 첫손으로 꼽는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1800년대 말부터 각종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비빔밥은 1990년대 초에 처음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됐다. 비행기 꼬리 부분에 탄 승객은 잘못하면 비빔밥을 못 얻어먹을 수 있다. 앞자리 승객들 대부분이 치킨, 미트(고기)대신 비빔밥을 주문해서다. 비빔밥은 단시간 내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지금은 전 세계 기내식 가운데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비빔밥은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1958~2009)이 선호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은 입이 짧기로 유명하다. 외국순회공연에 전속요리사를 달고 다니는 그는 유독 한국에선 비빔밥을 즐겼다. 외식하는 날을 빼면 하루 세끼 비빔밥만 찾았다. 그가 좋아하는 비빔밥은 우리가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가 묵은 호텔 신라 한식당 주방장은 마이클 잭슨만을 위한 비빔밥을 개발했다.

콩나물‧무채‧가지‧호박 등 10가지 야채에 참기름을 뿌린 것으로 일반 비빔밥과 달리 고추장과 육류가 들어가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은 이 비빔밥에 프랑스산 생수와 수박 세 쪽만을 곁들여 먹었다. 마이클 잭슨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도 비빔밥을 주문했다. 호텔 측은 이후 ‘잭슨 비빔밥’이라 이름 짓고 그릇 당 2만2000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 주방장은 “호기심으로 이 비빔밥을 찾는 손님들이 하루 10여명이었으나 일본인 등도 하루 50여그릇씩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먹어본 비빔밥 중 가장 맛있던 집은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있는 한식당이었다. 비빔밥은 밥에 잡곡을 넣으면 안 된다. 반드시 흰쌀밥이어야 한다. 잡곡밥은 제각각의 나물 맛을 희석시켜 버린다.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적당한 끈기로 뭉쳐 있어야 하며 질거나 고두밥은 절대 안된다. 밥이 질면 비빔밥이 아니라 비벼버린 밥이 돼버린다. 초밥용 수준이라면 적당하다고 할까. 이 식당의 잘 지은 쌀밥과 은은하게 무친 나물들, 달지 않은 고추장, 볶은고기와 촉촉한 달걀프라이는 비빔밥의 오묘한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 오니시가 열정과 혼신을 다해 라멘을 개발해 미슐랭 별을 받았듯 우리도 비빔밥을 개발해 미슐랭 별을 받아볼 만하다. 라멘도 받는데 비빔밥으로 못 받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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