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오 창우조경 대표이사
이순오 창우조경 대표이사
  • super
  • 승인 2006.08.26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경, 마음속의 정원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

은퇴와 함께 무료해지는 일상. 새로운 일자리나 여가수단을 찾아보지만 마땅찮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렇다할 소일거리가 없어 하루하루 시간보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집 앞 뜰이 있거나 몇 해 동안 묵히고 있는 정원이 있다면 안성맞춤. 조경에 눈을 떠보자.

 

1990년대 초부터 국내 조경사(造景史)를 일궈온 창우조경 대표이사 이순오(50) 사장은 “값비싼 자재로 치장하고 희귀한 나무를 줄 세우는 것이 조경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내가 좋아서, 내가 즐길 수 있는 마음속의 정원을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조경”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자가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쉰. 하늘이 내려준 소임을 깨달았다는 것일까.

 

이순오 사장은 “이제 조경을 말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뭇사람들은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사람들의 사치쯤으로 여기는 조경과 함께 언 30년을 보낸 인생이다.

 

1957년 서울 상계동 앞마당 너른 집에서 태어나 틈만 나면 나무와 씨름하는 부친 바지자락 붙들고 유년시절을 보낸 그다.

 

세월과 함께 나무도 자라 재목이 되니 지금은 예순을 코앞에 둔 형님 기혁씨가 먼저 부친 뒤를 이어 조경에 손을 댔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자리한 지금의 ‘남해농원’, 옛 한길조경이었다. 허나 당시는 조경이랄 것도 없는, 나무를 심고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부친과 형님으로 이어진 조경은 이순오 사장에게 거역할 수 없는 가업이 돼버리고 말았다.“1976년 경희대 조경학과에 들어갔어요.

 

왜 조경학과를 선택했냐고 물으면 딱히 할말은 없어요. 그저, 아니 그냥 조경학과에 들어가야 될 것 같았으니까요. 오죽했겠습니까.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나무 밖에 없었고, 그 나무들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정식(?)으로 조경에 눈을 뜬 이순오 사장. 이 즈음 30년 조경 인생의 첫 페이지를 열게 된다. 하숙방에 들어앉아 부모님이 부쳐주는 학비를 일수 찍듯 꼬박꼬박 챙기던 친구들과 달리 스스로 벌어야 했으므로, 이 사장에게는 일거리가 필요했다.

 

형님이 운영하는 한길조경에 나가 현장감각을 익힌 것도 보배 같은 경험이 됐다. 남이라면 가진 것 몸 밖에 없는 철부지에게 허드렛일이나 시켰을 일.

 

그러나 이 사장은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현장을 드나들며 조경업계의 기인들을 만나게 된다.“이렇다할 조경문화나 기술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4~5명의 기인이 있었지요.

 

경관석이나 호박돌이라면 눈을 감고도 척척 쌓아 올리는 사람, 연못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사람, 사대부집 나무만 관리해 주는 나무 식재 전문가 등 업계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기인들이 있었지요.

 

현장에서 이 분들을 만나 기술을 전수받은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화의 주인공은 그 기인 가운데 한 명으로 지금도 막역하게 지내는 김복률(62) 씨다.

 

업계에서 ‘김감독’으로 통하는 김복률 씨는 당시 물레방아 주변에 돌 쌓는 기술만큼은 촛불 끄고 붓글씨 쓴 한석봉이 부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조경학 전공 뒤 30년 현장경험 통해 ‘마이다스’로 우뚝


“무보수에 잡일을 도맡으며 보름을 따라다녔건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데 ‘김감독이 밥보다 맥주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지요. 생맥주 2만 리터를 비우고 적잖이 술이 취한 김감독에게 ‘이건 이렇게 하는 것 맞지요 ’ 떠봤더니 평소에는 단호하게 ‘아냐!’라던 대답이 ‘맞아!’라고 바뀌더군요.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며 30대가 됐습니다.”


그가 ‘창우조경’이라는 간판을 내건 때가 1991년 3월이었으니 15년 동안 작업현장의 기인들과 조우하며 생생한 기술을 전수받은 셈이다. 그에게 스승과도 같은 조경기술자는 ‘이원조경’(옛 한양조경)에서 감독으로 일하다 지금은 강원도 양양에서 소나무를 가꾸고 있는 김복률 씨를 비롯해 최창하·정남성 씨 등 내로라는 기라성들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조경기술자들이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 분들은 나름대로 근대조경을 뒤쫓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분들로부터 기술을 뛰어넘은 문화가 태동한 것이지요. 아, 근대조경이 뭐냐구요  쉽게 말하면 군인처럼 반듯반듯한 나무들을 일렬로 죽 세우던 일제시대의 정원방식을 탈피해서 연못도 만들고 꽃나무도 심으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곁들인 것이지요.”


그랬다. 8, 90년대만 해도 잘 가꾼 정원이라면 중고등학생 스포츠형 머리스타일처럼 ‘칼’ 같이 손질된 넓은 잔디밭에 역시 칼 같이 전지(剪枝)된 향나무 병정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더러는 값나가는 수석을 놓기도 하고 백년은 됐을 법한 소나무를 옮겨심기도 했다. 이순오 사장은 “모두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일침을 놓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정원이라는 개념이 대중적이지 못했지요. 물론 담양 소쇄원처럼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빼어난 정원도 있지만 대중의 문화라고는 보기 어렵지요. 대중에게 정원개념이 퍼진 것은 일제시대부터였습니다.”


이순오 사장 스스로 정원의 형식과 조원(造園)의 재료에 있어 틀을 깨는 데는 해외 유학파들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들어온 유학파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하며 평범한 돌과 나무, 심지어 나무뿌리나 원석, 철(스틸)이 조경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당시 국내에서 나름대로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유학파들의 그 신선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접한 뒤 심한 몸살을 앓았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었지요. 조경은 창조니까요. 나름대로 전통적인 방식에 유학파들로부터 배운 방식을 접목해 더욱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됐지요.”


이름난 건축디자이너들과 조우하면서 조경이 설치미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1996년 서울시 조경상을 수상한 뒤 1999년 중앙미술대전 설치미술 초대작가로 선정됐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가인화랑’에서 김백선·박형원·이성록 등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4인전’을 열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고, 이순오 사장을 찾는 이가 부쩍 늘어났다. 태영골프장 클럽하우스 ‘마른연못’, 현대백화점 삼성점 옥상조경, 경기도 여주 캐슬라인골프장 진입로(정문)와 클럽하우스, 강남보건소, 박술려 한복 사옥,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자리한 바(bar) ‘모스’, 코엑스 ‘TTL 존’ 등 이순오 사장이 손댄 곳은 하나 같이 명소로 거듭났다.


조경업계의 대부 혹은 대한민국 최고의 조경전문가 아니면 잘 나가는 조경사업자, 호칭이야 어떻든 이순오 사장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평범한 조경기술자로 불리어도 좋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처럼 인상 좋은 그도 얼굴을 찡그려야 할 때가 있다.

 

“욕심 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가꾸면 내 정원”

 

“조경은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문화여야 합니다. 더 이상 부잣집 사람들이 즐기는 값비싼 사치가 아니지요. 하지만 조경전문가조차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값비싼 재료로 둘러싸고, 자로 잰 듯 정형화해야한다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순오 사장은 가끔 고객들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바로 그 고정관념을 고집하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문화와 트랜드가 깃든 자연스러운 조경을 소개하고 권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순오 사장은 설득되지 않는 경우 과감하게 ‘철수’한다. 조경기술자는 단순노동을 하는 ‘일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내 인테리어기술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조경기술자는 ‘아저씨’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 사장이다.

 

조경도 이제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외국자재를 수입해 무분별한 작업으로 일관하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조경이 아닌 내가 즐기고 만족하는 조경이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30년 동안 쌓고 지켜온 풍부한 현장경험과 직업적 자존심에서 우러나온 이순오 사장의 철학이다.


이순오 사장은 조경에 관심 있는 본지 독자들에게 값비싼 조언을 선물했다.


“조경, 어렵지 않습니다. 앞뜰에 명품나무 한 그루 심고 정성껏 가꾸세요. 자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준다면 이것만큼 값진 유산도 없을 것입니다. 너무 큰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면적에 여유가 있다면 가시오가피 나무, 엄나무 등 약용식물 2주, 유실수 2~3주, 주목, 소나무 등 관상수 3주, 약용허브, 야생화를 적절하게 어울려 심으면 훌륭한 정원이 됩니다.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좋으면, 내가 즐겁다면 그것이 최고의 정원입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