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후반전과 인저리 타임에서-‘나이는 역량의 원천’
인생후반전과 인저리 타임에서-‘나이는 역량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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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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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에 창업한 김상문 회장


한때 한국출판계의 ‘황제’란 소리를 듣던 김상문(金相文) 회장.

 

1915년생으로 올해 만 91세가 되는 그는 재정난 끝에 평생에 걸쳐 일군 기업인 ‘동아출판사’를 70대 중반의 나이에 남의 손(두산동아)에 넘겨야만 했다.

 

보통사람이면 충격으로 쓰러졌거나, 만사에 의욕이 꺾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업이라면 진저리가 나서 재 창업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범인으로선 인저리 타임이라 할 83세 때에 출판사를 재 창업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저서를 직접 세일즈 하러 다니는 왕성한 체력까지 보여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건강비법과 심신수련을 통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하겠노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40대와 60대 두 번 변신


업종에 따라, 혹은 변신의 폭에 따라 40대의 대변신은 60대의 정년 후 변신에 못지않은 모험이 따른다.

 

벤처형 전자회사인 ‘미래산업회사’의 정문술(鄭文述) 회장은 18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다가 42살 때 창업을 했다.

 

다른 업종과는 달리 디지털업계로선 ‘환갑’과 맞먹는 인생후반 연령대에 창업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자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사이 실패와 배신도 수 없이 겪었지만 기업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그는 또 한 번 남다른 변신을 했다.

 

2001년 60세 때에 재산의 대부분인 300억원을 카이스트(KAIST)에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은퇴함으로써 우리사회의 얇은 기부문화에 모범을 보여주었다.

쇠똥을 치우는 대변신


안성에 있는 국내 굴지의 목장인 ‘성원목장’의 창업자인 강성원(康誠元) 회장은 45세 때인 1973년 젖소 스무 마리를 갖고 낙농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단순하게 보면 중년의 나이에 도전한 것인데 뭐가 특이하냐고 할지 모르나, 강 회장의 전력을 알면 사정은 달라진다.

 

육군소령으로 5·16에 참여했던 그는 중앙정보부 조직과 공화당 사전조직에 깊숙이 관여한 주체세력의 한 사람이었다.

 

중정연구실장과 8대 국회의원을 거친 그는 1972년 10월 유신에 반발해 정계를 떠나 낙농업자로 변신한 것이었다.

 

지금도 안성의 15만평 목장에 젖소 700마리를 기르고 있으며, 강릉에도 40만평 규모의 목장을 일궈, 가히 ‘낙농재벌’에 가깝다.

 

끗발 센 정치권력의 일선에서 활개 치던 그가 하루아침에 목부가 되어 쇠똥을 치우리라곤 아무도 상상 못했듯이 오늘의 성공 역시 대역전을 노린 그의 후반기 투혼을 모르곤 이해하기 어렵다.

늦깎이 등단의 사례


문단에서도 40대의 데뷔는 환갑의 연대로 비유된다. 신문사 주필과 편집국장을 지내고 5·16 때 부당하게 구속된 소설가 이병주(李炳注·1921~1992)는 44세 때인 1965년에 작가가 되어 모두 30권이 넘는 소설과 산문을 세상에 내 놓았다.

 

여류작가 박완서(朴婉緖) 역시 40살 때 늦깎이로 문단에 나와 끊임없이 화제작을 낳으며, 75세인 현재까지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작고한 인기 실록문학가 이태(李泰)는 65세 때인 1988년 ‘남부군’을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정당인으로 있었던 그로선 대역전의 변신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세계야말로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오히려 역량의 원천임을 깨닫게 해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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