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잠 좀 자자. 할머니 때문에 잠을 못자겠어.”
서울 용두동에 사는 최모(68)할머니는 어제 밤에도 손녀딸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다. 주 할머니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딸과 한 방을 쓰는데 밤에도 서너 번 이상 깬다.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한 두 시간 간격으로 다시 깨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손녀딸은 일단 잠이 들었다 하면 천둥이 쳐도 모를 정도로 단잠을 잔다.
자신은 잠이 들어도 곧 깨고, 깬 잠을 다시 돌리려면 상당히 애를 먹는데 ‘쌕쌕’ 곤히 잘도 자는 손녀딸을 보면 최 할머니 입장에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최 할머니는 처음엔 혼자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민을 해결하려 하지만 계속 잠이 안 들면, 관심사가 손녀딸에게 간다.
손을 잡고 쓰다듬거나 꼭 껴안으며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잠도 잘 자네”하며 토닥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곤히 자던 손녀딸은 잠을 깨게 되고 급기야는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최 할머니처럼 생체리듬이 깨져 고생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의외로 많다. 밤이면 잠을 자고 낮에는 왕성하게 활동을 해야 하는데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낮에도 몸이 느른해 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받는 노인들이 많은 것.
그 이유는 뭘까? 동경여자의과대학 교수인 오오쯔까 구니아끼씨는 한 마디로 ‘나이 탓’이라고 한다.
사람의 생체기능은 사춘기를 경계로 성숙하고 자율신경 기능과 내분비기능을 중심으로 뚜렷한 20~28시간의 리듬을 확립시키며 건강을 유지해간다. 그런데 65세를 넘어서면 각 장기 기능이 저하되고 이 리듬의 발현도 애매해진다는 것.
수면, 각성주기에 혼선이 빚어지는 증상이 그 대표적. 잠이 늦게 들고, 자더라도 도중에 자주 깨며, 아침에 일찍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등 불면증이 나타나고 논램 수면(깊은 수면)과 램 수면(얕은 수면)을 합친 시간이 짧아진다고 한다. 또 근력의 쇠약과 골격의 변화로 인해 일상의 활동량이 감소를 한다고 한다.
체온은 보통 밤에서 이른 아침 사이에 낮아졌다가 오후에는 상승하는데 연령이 높아지면 1일 체온 변동 폭이 작아진다. 자율신경에도 변화를 보여 젊은 사람에 비해 교감신경 기능의 긴장이 커지고 부교감 신경 기능이 저하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혈관의 동맥경화나 혈압조절기구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능저하가 원인이 되어, 혈압이 신체적·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동 폭도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내분비 기능에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 갑상선 호르몬과 성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낮아지면서 1일 변동 폭 역시 작아진다고 한다.
이상이 오오쯔까 구니아끼씨가 말하는 고령자의 생체리듬이 깨지는 원인. 하지만 오오쯔까 구니아끼씨는 다행히도 생체리듬에 깊이 관여를 하는 부신 피질 호르몬계는 고령이 되어도 충분히 보존된다고 한다. 따라서 낮 동안 신체 활동량을 높여 수면을 충분히 취하게 되면 저하되는 생체리듬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고령자는 근력 쇠약과 골격 변화로 인해 일상의 활동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
이웃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운동을 하루 30분 정도 적당한 시간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반복하는 것은 생체리듬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또 하루 종일 실내만 있게 되면 생체리듬이 저하되므로 하루 중 몇 십분은 햇볕을 쬐고 방의 조명도 밝혀두는 것이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