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박정희 前 대통령(5)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박정희 前 대통령(5)
  • super
  • 승인 2006.08.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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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추방 필생 목표에도 ‘골프 인식’은 개방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은)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역사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편향성 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건강 노년, 문화노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세번째로 박정희 전대통령 편을 연속 게재합니다.  〈기획 취재팀〉

1950년대 군인 시절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를 치지 않았거나 즐기지 않았다. 그런 그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골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안타까워하며 골프를 쳤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전된 데에 따른 보상의식이었을까, 아니면 발전된 사회를 내다보고 한걸음 앞서간 것이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던 관악CC(현 리베라CC)에서 사장을 역임한 조인상 한국캅셀 회장은 ‘한국골프산업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핸디 16정도의 실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코어는 대개 90대를 오르내렸다. 한번은 85타를 치고 기분이 좋아서 조 회장에게 핸디 18을 놓으면 어쩌겠는지 물었다고 한다. “핸디 18은 짜십니다”라고 하자 “그럼 16으로 하지”라고 하여 그 뒤부터 핸디 16으로 정해졌다.
핸디 16이면 요즘 기준으로 보면 골프에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한 실력은 아니다.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핸디가 좀 더 후했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도층 골퍼들 중에서는 쳐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간히 한양CC나 관악CC를 찾아 골프를 즐겼다.
그런데 동반자 없이 불시에 경호원만 대동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골프장이 흔치 않던 시대였고 당시 대통령이 자주 가던 골프장들이 대개 명문이어서 장관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기업인들이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그 인사들 중에서 알만한 사람들에게 제의하여 함께 라운딩을 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당시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에 대한 반응들을 살핀 것도 물론이었다.
클럽하우스에서 2~3시간 
식사하며 담소
조 회장은 관악CC를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은 이유로 경호상의 용이성과 스코어가 잘 나오는 짧은 코스를 꼽았다. 경기가 끝난 뒤 함께 라운드를 한 인사들과 VIP룸에서 식사와 술을 하며 담소를 즐기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클럽하우스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평소 좋아한 막걸리를 애용했다는 사실이었다. 1970년대에 국민의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막걸리였으나 골프장 클럽하우스 VIP룸에서 일국의 대통령이 내로라하는 각계 지도자들과 둘러앉아 넓직한 막걸리사발을 돌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희화적이다.
막걸리가 사람들을 허심탄회하게 하는 술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의 대중적인 술이어서였을까. 휘하 각료나 고위급 관료들과도 막걸리를 마시며 국사 운영의 노고를 격려하거나 당부한 일이 많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듯이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을 찾아 인부들에게 막걸리를 돌리고 같이 마시기도 했다.
5·16 직후부터 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한 경제 참모로 김학렬 전 경제기획원 부총리의 경우도 막걸리를 자주 마신 사람 중 하나였다. 김학렬 부총리를 경제담당 ‘과외선생’으로 모신다면서 오밤중을 마다하고 찾아가 술상을 보게 했다. 홍하상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에 의하면 아닌 밤중에 대통령을 맞이하여 변변한 음식이 없는 김 부총리의 부인이 콩나물국과 김치 한 접시, 집에서 담근 동동주를 내도 박정희 대통령은 진수성찬이라며 술잔을 받았다고 한다. 술과 안주는 토속적이고 서민적이어도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앞날의 한국경제의 향방이 걸려 있을 만큼 진중했다.
“동동주, 밀주로 고발할 거요”
앞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에 의하면 불시에 찾아오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 부총리의 부인이 한번은 볼멘소리를 했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린 사람을 이렇게 밤중에 찾아오셔서 새벽까지 괴롭히면 어떻게 하세요  가뜩이나 위가 안 좋아 건강이 걱정되는데…” 그러면 박정희 대통령은 껄껄 웃으며 “자꾸 핀잔을 주면 동동주 담근 거 밀주로 고발해 버릴거요”라고 짐짓 으름장을 놓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1972년 어느 날, 국무회의 중에 김 부총리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는 메모를 받고 만다. 브리핑을 받다 잠시 맥을 놓고 흐느끼던 박 대통령은 화장실에 가서, “이 불쌍한 사람아, 내가 당신을 죽였네”하고 얼마간 벽에 기대고 통곡했다고 한다. 빈소에도 직접 가서 대통령이라는 지위도 잊고 울먹이며 영정에 절을 했다.
열악한 산업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은 근로자들도 많지만, 이처럼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몸 바친 아까운 인재들도 있었다.
김 부총리를 혹사시킨 미안함을 이렇게 표한 것으로 보아 박정희 대통령도 과로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치의들도 그 점을 늘 경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거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육영수 여사를 모셨던 홍정자씨는 농촌출신인 박 대통령이 사관생도로 단련된 신체와 건강을 타고나기도 했으며, 국정 수행에 분망하여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반자 없이 골프장에 불시에 나타나 알만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라운딩을 한 것처럼 상황이 되면 어떤 스포츠라도 즉시 어울려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직접 라켓을 잡고 배드민턴을 쳤다. 휴양지에서 가족과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은 국가 기록원의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진해 대통령 별장에 휴가 가서는 백사장에서 배구하는 경호원들과 수영복 차림으로 어울려 경기를 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 후정에서 육영수 여사와 함께 운동삼아 우리 활(국궁)을 쏘는 연습도 가끔 했다. 승마를 한 기록도 있지만 건강을 생각하고 규칙적으로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골프는 박 대통령이 자주 즐긴 편에 속했다.
국민적 정서 고려 골프장 허가
늦게 배운 만큼의 거리감이었을까. 아니면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조심했던 것일까. 골프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시 일부 고위층이 내기골프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범을 보여야 할 상류층 사람들이 몇 십만 원씩 내기 골프를 해서 위화감을 조성하여서야 되겠느냐”고 질책 하기도 했다.
내기골프가 접대골프로 이어지고, 접대골프를 두고 재판정에서 뇌물수수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오늘날에도 새겨들을 만하다.
특유의 리더십이었는지 모르지만 언론과 국민정서를 위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골프장 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면서도 골프장 건설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골프장 허가가 곧 환경오염의 주범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지. 골프장 하나가 늘어나면 농촌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점을 왜 생각 못하나. 농한기 때 골프장이 인근에 있으면 고용도 늘고, 지역 경제도 발전할 것인데…”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빈곤타파를 국민적 시책으로 펼쳤던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호화사치 스포츠의 대명사인 골프를 적당히 억제하는 한편으로 골프 애호가들과 골프산업 관계자들에게도 희망과 친근감을 표시하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대통령이 골프를 적대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 전체 골프문화와 산업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대단하던 시절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소박하면서도 신중하게 골프를 즐겼다. 라운딩을 할 때는 앞뒤 한 팀씩을 비워두는데, 그늘집에서 담소를 나누다 보면 늦어지기도 했다. 조인상 한국캅셀 회장은 앞의 팀에게 양해를 구해 패스를 받게 될 때면 박정희 대통령이 모자를 벗고 “미안해서 어떡허죠, 감사합니다. 즐겁게들 치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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