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귀 쫑긋 ‘마을미디어 시대’ 활짝
주민들 귀 쫑긋 ‘마을미디어 시대’ 활짝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1.24 10:57
  • 호수 5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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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어르신도 10대 청소년도 누구나 DJ로 활약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만드는 마을미디어가 서울에만 100여곳이 생겨나는 등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마을미디어 ‘강서FM’의 대표 방송인 ‘홍재응의 웰다잉인생’의 100회 특집 공개방송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만드는 마을미디어가 서울에만 100여곳이 생겨나는 등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마을미디어 ‘강서FM’의 대표 방송인 ‘홍재응의 웰다잉인생’의 100회 특집 공개방송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서울시 2012년 시작해 현재 100여개 운영… 경기·전북 등으로 확산

강서FM 등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마을 이모저모 다뤄 인기

[백세시대=배성호기자]지난 11월 10일, 서울 강서구 강서어르신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는 공개방송이 진행됐다. 일찌감치 200명을 채울 수 있는 강당은 만석을 기록했다. 기대 속에 무대에 오른 것은 놀랍게도 91세 김순덕 어르신이었다. 일일DJ로 나선 그는 4남 1녀로 태어나 우여곡절 많았던 삶과 늦게나마 어렵게 한글을 깨우친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는 대학에 다녀요. 대한노인회 강서구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다니면서 즐겁게 살아요.”

김 어르신의 농담에 강당은 일제히 웃음바다가 됐다. 강서구 마을미디어 ‘강서FM’의 대표 프로인 ‘홍재응의 웰다잉인생’ 100회 특집 공개방송은 모처럼 복지관 어르신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10대부터 80대 노인들이 주축이 돼 운영되는 마을미디어가 주목받고 있다. 마을미디어란 전문가들이 만드는 미디어가 아니라 마을 주민이 참여해 만드는 대안 방송을 일컫는다. FM 라디오, 영상, 신문, 인터넷라디오(팟캐스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100곳 이상의 마을미디어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비롯해 전북과 경북 등지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마을미디어는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현장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형식이어서 주민들의 공감이 크기 때문에 주민과 주민,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공론의 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관악구․마포구 등 전국 7개 지역에서 시작된 공동체 라디오 시범사업이 그 기원이다. 이후 영상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센터가 지역별로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마을미디어 확산의 토대가 마련됐다. 팟캐스트의 등장도 마을미디어 성장에 한몫을 했다. 간단한 녹음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PD, DJ가 돼 방송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2012년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을미디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시는 올해에도 75개 단체를 선정해 최소 600만원에서 1500만원까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마을미디어가 일반 방송과 다른 점은 10대부터 노인, 장애인까지 누구나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을미디어별로 주기적으로 DJ, PD를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해 접근도 쉽다. 또 기존 언론에서는 깊숙이 다루지 않은 마을의 이모저모를 비롯해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2014년 설립돼 서울 대표 마을미디어로 성장한 ‘강서FM’도 이를 파고들었다. ‘홍재응의 웰다잉인생’을 비롯 매주 10여개의 팟캐스트를 제작해 강서구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중학생 양지원·서유나 양부터 최고령 김청길(82) 어르신까지 공감 가는 방송을 진행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DJ로 나선 주민들은 또래 지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예를 들면 양지원·서유나 양은 ‘중딩이라 전해라’를 통해 중학생이 된 후 벌어진 고민들을 솔직담백하게 전달해 또래 청소년들과 이들의 심리를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홍재응 씨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방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을주민들 간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모였다”면서 “어르신들도 배우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마을미디어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홍재응 씨가 후배 이명화 씨와 진행하는 웰다잉인생도 마찬가지다. 시니어세대 누구나 고민하는 죽음을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등 웰다잉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 형성과 웰다잉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매회 수백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인기 팟캐스트로 자리잡았다.

이명화 씨는 “처음에 웰다잉 이야기를 꺼내면 어르신들이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하지만 방송이 진행되면서 중요성에 공감하고 그만큼 좋아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마을방송마다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구축하고 대본 작성부터 녹음, 편집까지 혼자서 하는 사람이 많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30분 분량의 방송을 위해 거의 매일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턱없이 부족해 자비를 들여 운영되는 곳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 주민들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차원에서 프로같은 마음가짐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자유인 김청길이 전하는 세상이야기’, ‘말로 듣는 강서나들이’ 등을 진행하는 김청길 어르신은 “마을미디어의 매력은 포장된 것이 아닌 날것의 마을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면서 “세대 간 갈등도 줄여주고 나아가 공동체 정신도 살려줘 몸이 허락되는 한 계속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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