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어려움 이기고 수능 도전한 고령 응시자들
갖은 어려움 이기고 수능 도전한 고령 응시자들
  • 최은진 기자
  • 승인 2017.11.24 14:35
  • 호수 5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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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최고령 수능 응시 이명순 어르신 “아직 안 늦어”

[백세시대=최은진기자]포항 지진 여파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된 채 치러졌다. 이번 수능에는 85세 이명순 어르신이 최고령 응시자로 시험을 치러 화제다. 온갖 역경을 딛고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늦깎이 수험생 3인을 소개한다. 

2018학년도 수능을 본 최고령 응시생 85세 이명순 어르신은 지난 14일 재학중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이선재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합격기원 떡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학년도 수능을 본 최고령 응시생 85세 이명순 어르신은 지난 14일 재학중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이선재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합격기원 떡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순 어르신, 영어 몰라 곤욕 겪은 뒤 중학교 과정 시작

81세 장일성, 73세 차영옥 어르신도 도전 “배움엔 끝없다”

최고령 응시자 이명순(85) 어르신은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이명순 어르신은 배움과 도전에 대한 훌륭한 모범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이 어르신은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다. 또한 결혼과 육아에 전념하면서 학업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 그저 꿈으로만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자녀가 살고 있는 독일로 여행을 가게 됐다. 도중에 화장실이 너무 급했는데 영어로 ‘toilet’(토일렛) 한 마디를 할 줄 몰라 당황했다. 손짓, 발짓 등 아는 것을 다 동원해 경우 화장실을 가게 됐을 때 이명순 어르신은 ‘배워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만학도들이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교장 이선재)에 중학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한마디씩 던졌다. 하지만 이 어르신은 굴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즐기는데도 바빴다. 배움의 불씨를 당겨준 영어는 90회까지 암송한 결과 기초 회화가 가능해졌다. 이제는 해외에 나가서도 자신 있게 화장실을 물어볼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게 된 게 아니다. 입학 전보다 더 당당해진 자신을 느끼고 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게 더 이상 창피하지 않게 된 것.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이미 수시 전형을 통해 한 군데 합격한 상태다. 이명순 어르신은 “다른 사람들은 다 늦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늦지 않았다”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후회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자랑”

해방과 6·25 전쟁으로 소녀 가장이 됐던 81세 장일성 어르신은 75세에 초등학교에 편입학해 올해 수능을 본 여고생이다. 장 어르신은 한글도 서툴던 입학 당시를 회고했다. 장 어르신은 “얼마나 설레고 잠을 이룰 수 없던지 그 때 요동치던 심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장 어르신을 위해 가족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땐 남편이 대신 입학 원서를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며 도전을 응원했다. 언제나 학교생활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남편이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됐다. 입원한 지 2개월도 안 돼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자신을 북돋아주며 함께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차오를 때가 많다. 장 어르신은 “아마도 매일매일 등굣길을 함께하며 학교생활을 응원해줬을 것”이라며 “졸업장을 받으면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자랑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온갖 암도 못 꺾은 배움의 의지”

만 73세 차영옥 어르신은 열정으로 신체의 아픔을 극복한 투사다. 27년 전 말기 암으로 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식도와 소장을 연결해 음식도 마음껏 먹지 못한다. 또한 수술을 받으며 항암제를 너무 많이 맞아 항상 두통에 시달린다. 차영옥 어르신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나를 살린 항암제가 너무 원망스러워 한탄했던 때가 많았다”며 “건강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공부를 잘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차 어르신은 6년 전에는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년 전에는 사고로 오른쪽 갈비뼈 6개가 부러졌다. 여전히 고통스러워 지금까지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백내장 수술까지 받아 책을 오래 볼 수 없다. 주변에서는 대학 진학을 응원하면서도 이런 몸 상태로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차 어르신은 “공부에 대한 열정은 꺾을 수 없고 이런 시련을 이겨낸 내 자신이 대견하다”며 “비록 방금 공부한 것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없지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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