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북제재가 통하지 않는 걸까
왜 대북제재가 통하지 않는 걸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2.08 11:06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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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원유공급 막아도 소용없어… 대체에너지 개발

[백세시대=오현주기자]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승리를 위해 280만명의 군인, 800만톤의 폭탄 그리고 2400억 달러의 전쟁비용을 쏟아 부었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이유는 무얼까. 베트남을 승리로 이끈 건 월맹군이 내밀하게 파놓은 구찌터널이다. 그들은 정글 곳곳의 위장된 터널에서 나와 기습공격을 하고 다시 구멍 속으로 숨어들어 미군의 피해가 컸다. 미군이 터널을 폭파하려 온갖 수를 다 썼지만 끝내는 실패했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은 이 터널을 세계에 공개했다. 터널 내부는 지하 3층 구조로 돼 있어 외부공습이 지하 10m 깊이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곳에 숨어 지내던 군인과 일반인의 수는 무려 17만명이었다. 심지어 학교까지 있었으니 터널이라기보다는 지하도시라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구불구불한 터널을 길게 폈을 때 총길이가 230여km였다. 

뜬금없이 40년 전 얘기를 꺼낸 건 북한 때문이다. 지난 9월, 북한이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해 일본 본토를 넘어 태평양 해상에 떨어졌을 때 미국을 비롯한 중국‧러시아 등이 서둘러 고강도의 대북제재를 결의했다. 당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5호 내용은 이렇다. ▷유류공급 30% 가량 차단 ▷북한산 섬유제품 수입 금지 ▷북한 해외노동자 제한 ▷북한과 합작사업의 설립·유지·운영 전면 금지 ▷금지 품목을 적재한 의심이 드는 선박에 대해 공해상에서 검색 가능 등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같은 제재에 북한이 손들고 나올 것이라며 느긋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만인 지난 11월 29일 새벽에 북한은 또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했다. 이번 미사일은 일반적인 각도로 발사했을 경우 1만3000km 떨어진 미국 워싱턴까지 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기세가 드높았던 유엔안보리의 2375호 결의는 무용지물이 됐고 더 이상의 대북제재로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북으로 보내는 원유의 수송관을 완전히 잠그면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트럼프는 집요하게 수송관 꼭지를 잠그라고 시진핑을 설득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수송관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 날 것 같지 않아서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휘발유로 달리는 버스와 택시 요금이 전혀 인상되지 않았다. 기름 사정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진징이 교수는 중국이 원유수송관을 잠그더라도 북한은 자체적으로 얼마든지 대체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원유 공급의 완전 중단에 대비해 자체 유전에서의 원유 추출과 석탄에서의 원유추출에 힘을 쏟았다. 중유를 절약하기 위해 화력발전소의 무중유 착화법을 개발했다. 수출이 막힌 석탄을 화력발전소에 대량 투입해 화력발전소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군수공업의 선진기술을 경공업에 이양하면서 경공업제품의 국산화를 대폭 증가시켰다. 결국에는 2020년까지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식량 문제도 그렇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농업개혁을 통해 자급 수준에까지 이른 듯하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은 곡물을 수입하지 않았고 국제사회로부터 무상지원도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배고프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내부 식량사정이 전보다는 좋아졌다는 신호다. 

진징이 교수가 북한 전문가들에게 ‘국제사회의 새로운 고강도 제재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들은 “우리들이 제재를 받지 않으며 살아온 적이 언제 있었냐”고 되물었다. 수십 년 동안 제재를 받으면서 제재에 대한 기초체력을 길렀고 대응방법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결국 핵‧미사일 발사-대북제재-핵‧미사일 발사의 악순환이 이어지다 머지않은 날에 북한 핵‧미사일 완성으로 끝이 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이다. 제재의 한계가 명확한데도 우리 정부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겠다고 한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미군이 구찌터널을 없애지 못해 베트남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던 역사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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