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부족해 제 역할 못하는 권역외상센터
의료진 부족해 제 역할 못하는 권역외상센터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12.08 13:57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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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의료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전국 권역외상센터가 의료인력 부족, 낮은 보상체계 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닥터헬기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국 권역외상센터가 의료인력 부족, 낮은 보상체계 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닥터헬기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재 전국 9곳에 권역외상센터 운영… 필수인력 충족 한 곳도 없어

복지부, 내년 예산안 201억 증액… 의료계 “중증외상 의료수가 개편을”

[백세시대=배지영기자]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관리가 미흡한 국내 응급의료체계에 대해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를 치료 중인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을 지적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에 대해 365일 24시간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 등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용시설과 장비, 전문 인력을 갖춘 외상전용 전문치료센터를 말한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권역외상센터는 △가천대길병원 △아주대병원 △충북대병원 등  9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매년 중증 외상환자가 10만여명 이상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중증외상 진료체계가 취약해 외상환자 예방가능 사망률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2015년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30.5%였다. 이는 20%라는 목표치에 상당히 모자란 수치로, 미국과 일본의 비율이 10~15%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왜 그런 것일까? 전문가들은 △의료진의 높은 노동 강도 △낮은 보상체계 등이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권역외상센터 활성화 차원에서 의사 인건비를 1인당 연간 1억2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외상센터 한 곳당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문의 수는 최대 23명이다.

그러나 권역외상센터의 전담 전문의 인력 기준을 채운 곳은 권역외상센터 9곳 가운데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외상환자를 받기 위해서는 24시간 센터가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외상센터에 충분한 인력이 확보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외과 등 이른바 ‘비인기과’에 대한 기피 현상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전공의 모집에서 일반외과는 전체 정원 191명 가운데 172명이 지원하는데 그쳤으며, 흉부외과는 50%를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전공의들 일반외과 선택 기피

A대학병원 외상센터 전문의는 “현재 우리 병원에는 외상 전담 전문의가 10명이 채 되지 않아 당직 로테이션을 돌 최소 인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교수님들이 자원해 당직에 참여해줘서 4~5일에 한 번씩 당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상센터의 업무 특성상 일이 고되다보니 얼마 버티지 못하는 의료진도 적지 않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지난 12월 1일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외상센터 내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면서 “특히 간호사들은 손이 많이 가는 중환자들을 맡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3분의 1도 안 되는 병원인력으로 유지를 하다 보니 일이 고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외상센터에서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은 환자안전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중증외상의료 시스템 개선에 601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는 당초 정부가 제출한 400억원에서 201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이에따라 권역외상센터 소속 전문의 1인 인건비는 연간 1억2000만원에서 1억4400만원으로 2400만원 늘어난다. 의사 인건비는 총 68억원이다.

내년부터는 간호사 인건비도 지원된다. 그동안 간호사의 경우 인건비 지원이 없어 권역외상센터마다 간호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권역외상센터는 간호사 1명이 중증외상환자 1명을 돌보는 게 정상인데, 현재 운영되는 외상센터에서는 간호사 1명이 3~4명의 환자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내년부터 권역외상센터 간호사 1인당 연간 240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 입장에서도 간호인력 확충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진료 많이 할수록 적자 늘어나는 구조

그러나 의료계는 근본적으로 외상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중증외상환자 관련 의료수가 개선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중증외상환자는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할 때가 많다. 또한 중환자실 입원기간도 상대적으로 더 길고, 상처의 특성상 다수의 처치와 검사가 필요하지만 현행 건강보험 급여기준과 수가에는 이런 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증외상환자 진료 및 수술과 관련한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낮게 책정된 탓에 권역외상센터가 진료를 많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강현 대한외상학회 회장은 “외상센터 문제는 당장 눈앞의 인건비 예산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면서 “국가가 필수의료를 공공의료로 보고 이를 충분히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수익과 관계없이 국제 수준으로 인력을 채용하고 오로지 외상환자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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