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펴낸 고건 전 국무총리“특권과 반칙이 없는 국정 시스템 만들어 국민통합 이뤄야”
회고록 펴낸 고건 전 국무총리“특권과 반칙이 없는 국정 시스템 만들어 국민통합 이뤄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2.15 11:14
  • 호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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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가 지난 11월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가 지난 11월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대통령만 빼고 다 해봐… ‘정성 다하고, 남의 돈 받지 말고, 매일 새로워져라’ 지킨 덕 

박근혜 전 대통령, 아버지 기념사업에 전념했으면 탄핵 같은 불행 당하지 않았을 걸

[백세시대=오현주기자]

고건 전 총리의 회고록 ‘공인의 길’. 

고건(79) 전 국무총리가 최근 회고록 ‘공인의 길’(나남출판사)을 펴냈다. 이 책에는 30년 공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고건 전 총리는 두 번의 총리, 두 번의 서울특별시장, 세 번의 장관, 최연소 전남지사, 최초의 사회통합위원을 역임한 한국의 대표적 정치가이자 행정가이다. 보수와 진보에 치우치지 않는 행정의 달인, 안정적 리더로 국내외에 알려졌다. 고건 전 총리에게 듣는 화려했던 공직 생활과 인생철학.     

-어떻게 지내시나.

“북한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4년 출범한 아시아녹화기구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황해도 사리원 산에 1차 묘목사업을 시작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재개될 경우를 대비해 철원군 산림조합과 협력해 휴전선 접경지역에 대규모 북한조림용 양묘장(통일양묘장)을 조성 중이다.” 

-회고록을 내게 된 배경은

“원래는 중앙일보에 5개월 동안 쓴 글들을 묶어 ‘국정은 소통이더라’란 제목으로 냈다. 그 책을 누가 보랴 싶었지만 웬걸, 무슨 일만 나면 내 책을 참고용으로 삼았던 것 같았다. 기자들이 메르스 사태 때는 내가 국무총리 시절 범정부 차원으로 사스방역을 이끌었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 탄핵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했던 체험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새삼 인터뷰 할 것 없이 책에 다 적혀 있다’고 했는데 기자들 말이 ‘보려고 해도 책이 없다’고 했다. 내 회고록의 핵심 주체라 할 공인의 길과 소통의 문제야말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심적인 과제라 느끼고 언론 대담을 추가하고 제목을 달리해 다시 펴내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다.

“정말 답답했다. 오만, 불통, 무능…, 하시지 말았어야 했다.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전 만나서 충고했다는데.

“충고라기보다는 국가비상시국에 드리는 진언을 한 적이 있다.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가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으니 성역 없는 수사를 표명해 모든 의혹이 객관적으로 규명돼야 한다는 것과, 인적 쇄신과 동시에 국정시스템을 혁신해 새로운 국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3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초청해 함께 고민해 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결국 촛불집회가 연이어 일어나고 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되고 가결되지 않았나.”

-적폐청산이 도를 넘은 건 아닌지.

“탄핵소추 의결 전후인 2016년 12월에 국민일보가 의미 있는 여론조사를 했다. 국민에게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의 원인을 뭘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상류층 및 고위 공직자의 부패 47.8%, 정경유착 11.5%, 연고주의 11% 합계 70%로 결국 특권과 반칙이 70%였다. 적폐청산이란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 운영시스템 혁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 보복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특정 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사해서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겠지만 기본 목적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혁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건 바로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거기서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두 차례 총리를 지냈다. 바람직한 총리의 역할이라면.

“총리는 크게 주주형, CEO형, 집사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JP처럼 정치권력 형성과정에서의 지분이 있는 경우가 주주형이다. 나는 그런 거 없었다. CEO형은 서로 상호 필요에 의해 즉, 오너(대통령)가 필요에 의해 전문경영인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영삼 대통령한테는 총리 수락조건으로 해임제청권을 달라, 그래서 내각국무조정, 내각통할권을 보장 받았다. 마지막 집사형은 의전형, 대독형이다. ‘총리로 와주십시오’ 그러면 ‘아이고, 고맙습니다’하고 모자 쓰고 들어가는 거를 말한다.”

-소신과 철학을 지켜낸 행정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품안에 사표를 갖고 다닌다는 얘기도 있었다.

“1960년대 수습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2004년 권한대행으로 물러나기까지 순수한 공직기간은 30여년이다. 그 동안 내 나름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사표를 7번이나 쓰기도 했다. 임명직은 당연히 임명권자인 청와대 눈치를 보는 데 그걸 거부한 것이다. 임명권자인 청와대의 방침과 지시에 겁도 없이 반기를 들었던 거였다.”

-무슨 일로 사표를 그렇게 많이 썼나.

“최규하 대통령 아래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전야에 신군부가 국보위와 군정을 위한 비상계엄령확대조치를 했는데 거기에 내가 반대하고 사표를 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군정을 의미하는 거였다. 군정으로 돌아가면 안되기 때문에 이것에 반대하고 임시국무회의에 못 가겠다고 말한 후 사표를 쓰고 나왔다. 직업공무원은 그때 끝났다.”

-서울시장 재직 시 잊지 못할 일이라면.

“노태우 정부에서 임명직 서울시장 할 때였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통해 수서택지를 한보건설에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끝까지 청와대 지시를 거부했더니 법무부국장이 찾아와 ‘사태가 심각하다’며 ‘김모 도시계획국장을 바꾸지 않으면 구속이 된다, 그걸 예방하려면 국장을 바꾸라’고 했다. 그때 김 국장을 잡아가면 사회고발을 하려고 했다. 내 돈으로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 ‘여차여차하더니 이렇게 잡아갔다’고 광고를 내려고 했다.”

-행정 분야에서 실패한 정책은 없었나.

“전남지사로 내려갔을 때 산림국장이 건의안을 가지고 왔다. 지리산 일대에서 고로쇠물을 채취하는데 살아 있는 나무를 뚫기 때문에 나무의 생장에 나쁘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금지해야 한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고로쇠물을 채취해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 물로 건강관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현실을 잘 몰랐던 거였다. 고로쇠물을 뽑으면 나무가 죽는지 확인 안한 것도 잘못이었다. 죽은 나무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취소했으니 실패한 셈이다.”

-대통령 빼고 수많은 행정 및 정치 자리를 했다. 공직철학은 무언가.

“아버지가 준 훈시와 내가 스스로 터득한 것까지 합쳐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지성감민(至誠感民), 지자이렴(知者利廉), 일일신(日日新)이다. 공직생활 할 때 아버님이 ‘줄서지 마라, 누구사람이라고 낙인찍히지 마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인사운동하지 말고 누구의 가신이 되지 말라는 얘기였다. 결국은 일을 열심히 해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자이렴은 남의 돈 받지 말라는 뜻이다. 예전에 가친이 나한테 ‘남의 돈 받지 마라’고 했는데 이게 공직윤리상 당연한 것이었다. 마지막 일일신은 행정의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니까 그에 대처해 행정도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건 전 총리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사임.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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