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대신 종강… 일년 내내 강의하는 노인대학
졸업 대신 종강… 일년 내내 강의하는 노인대학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1.05 10:41
  • 호수 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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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회 종강식 연 서울 영등포 ‘새생활장수노인대학’
김성헌 서울연합회장과 봉사상 시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헌 서울연합회장과 봉사상 시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전무용, 민요, 시사·역사 등 14과목… 연간 교육시간만 7000시간

지자체 지원 예산 부족… 연합회 지원, 강사 자원봉사로 안정적 운영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이곳은 한국 노인대학의 산실입니다.”

김성헌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 새생활장수노인대학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 수만 400여명에 달하고 연간 교육시간이 7000시간에 육박하는 보기 드문 노인대학. 매월 지자체로부터 받는 운영비 90만원으로 매주 월·수·금요일 점심식사를 무료로 대접하고 14개의 과목을 운영하는 독특한 학교. 김성헌 회장은 아낌없는 칭찬과 함께 이 학교의 위대함을 일일이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새생활장수노인대학의 40번째 종강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3동 새생활장수노인대학(학장 곽준섭, 이하 새생활대학)의 제40회 종강식이 개최됐다. 

1976년 개설된 새생활대학은 2년 뒤인 1978년부터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종강식을 열고 있다. 대부분의 노인대학은 종강식이 아닌 졸업식을 연다. 학사가운과 학사모를 입은 학생들을 축하해주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가까이 진행된 교육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새생활대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졸업식을 열지 않았다. 설립 초기부터 평생교육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졸업이란 개념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학생회장을 맡은 함윤숙(78) 어르신은 “연초와 혹서기 각각 열흘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서 “말로만 평생교육이 아닌 진짜로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새생활대학은 지역에서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로 유명하다. 동튼 직후부터 장구 치는 소리가 시작돼 해가 질 때까지 교육이 이어지는 데다가 수업이 없는 주말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각종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수업과목도 고전무용, 민요, 생활체조, 시사·역사 강의, 인문학 강의 등 14개에 이른다. 단순히 과목만 많은 것이 아니다. 과목별로 주 3회 교육이 이뤄지는데 해당 강의시간도 2시간이나 된다. 보통 노인대학은 1주일에 하루만 집중적으로 4~6시간의 수업을 하고 과목별 교육시간도 1시간 내외지만 이곳에서는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 단순히 즐기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 전달에도 힘써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학생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지만 따로 식비를 받지 않는다. 

곽준섭 학장은 “지난해 3월부터 7개월간 대학교수를 초청해 매주 한 시간씩 인문학강의를 진행했는데 매번 강당이 꽉찰 만큼 인기가 많았다”면서 “준비 과정이 무척 벅차지만 올해에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 새서울장수노인대학이 지난 12월 29일 40회 종강식을 맞았다. 사진은 종강식을 진행 중인 새생활장수노인대학 학생들
서울 영등포 새서울장수노인대학이 지난 12월 29일 40회 종강식을 맞았다. 사진은 종강식을 진행 중인 새생활장수노인대학 학생들

규모와 질면에서 전국 여느 노인대학을 압도하면서도 적은 예산으로 운영이 된다는 점은 더 놀랍다. 학교는 매달 학생들이 납부하는 5000원의 회비와 지자체, 연합회로부터 받는 지원금, 독지가들의 후원금 등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회비를 안 내는 회원들이 많아 매주 3차례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강사료와 난방비 등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 없이 운영될 수 있는 데는 봉사정신이 있었다. 14과목 강사료에 들어가는 돈은 연간 1000여만원에 불과하다. 강사들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차비 수준의 강의료를 받고 있고 일부 강사들은 아예 돈을 받지 않아 가능했다.

노인대학 차원에서 김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을 부식비로 활용하고 있고 남는 돈은 지역의 어려운 노인들에게도 지원하고 있다.

곽 학장은 “컴퓨터 교육은 올해 84세의 신현준 사무장이 맡는 등 모든 강사들이 재능기부를 해줘 운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모든 공을 강사와 학생들에게 돌리지만 실제로 새생활대학이 현재와 같이 운영될 수 있었던 데에는 곽 학장의 헌신이 있었다. 새생활대학과 서울연합회노인지도자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서울에 노인대학을 확산시킨 일등공신이다. 50대 때 처음 학장을 맡아 이곳을 이끌고 있는 곽 학장은 지역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이끌어내 현재의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노인대학 건물을 짓는데 공헌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양천구, 강서구 등 총 8개 노인대학의 산파역할을 맡았다. 

연합회의 든든한 물적·심적 지원도 일조했다. 새생활대학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김성헌 회장과 고광선 사무처장이 나서서 지원해준 것.

종강식에서 고광선 사무처장은 “건물이 오래돼 곳곳의 보수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연합회의 영역은 아니지만 관련 기관에 전달해 나아질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새생활대학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올해에는 컴퓨터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지점으로부터 10대의 컴퓨터를 지원받아 컴퓨터실을 꾸며 교육에 들어간 것이다. 

곽 학장은 “컴퓨터 모르면 살기 힘든 시대”라면서 “‘오늘이 새롭고 내일도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 장수하자’는 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끊임없이 계발하겠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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