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신년사
김정은의 신년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1.05 11:02
  • 호수 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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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선동으로 가득 찬 ‘종이쪽지’에 불과
 

김정은의 신년사를 듣다가 갑자기 실소가 터졌다. 그는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는 종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를 처음부터 먼저 해왔고, 지금도 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반드시 할 사람이 그렇지 않은 나라를 향해 ‘너희들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듯 말하는 걸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김정은은 불과 몇 달 전에도 “남조선 것들 쓸어버려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그런데 비대한 그의 몸을 더욱 둔하게 보이게 만드는 밝은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는 새해 벽두부터 ‘앞으로 신사답게 서로 잘 지내보자’고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까 마치 철없는 아이에게 조롱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사람이 제 정신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김정은은 이렇게 말을 해야 했다. “나는 미 제국주의자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새해에도 쉼 없이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이다. 

김정은의 신년사 가운데 또 한 번 귀를 의심한 건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된 부분이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남한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도발과 살인을 서슴치 않았던 북이 생뚱맞게 너스레를 떠는 걸 보자 김정은이 실없는 인간이란 생각에 앞서 가소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 시간까지 북이 어떻게 남한을 배반하고 기만했는가. 중요한 시기마다 어떤 식의 도발로 찬물을 끼얹고 남한 국민을 실망, 분노케 만들었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의 민간 항공기를 폭파시켰고 2010년 아시안게임 도중에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민간인과 군인들의 생명을 빼앗고 재산을 파괴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남북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면서 뒤로는 휴전선에서 목함지뢰 도발을 일으켰다. 목함지뢰 사건 직후 한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본이 자그마치 32조원에 이른다. 

2016년 신년사에서는 ‘누구와도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놓고 며칠 뒤 4차 핵실험을 강행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비웃었다. 트럼트가 이번 신년사를 두고 “로켓맨이 한국과 처음으로 대화를 원하지만 이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북한의 속성을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김정은의 신년사 중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단어는 핵이다. 그럼에도 그는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해 미국의 모험적인 불장난을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을 갖게 됐다.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것은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겁박했다. 

김정은은 남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이 됐으며 그 지위는 불가역적 지위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한술 더 떠 “다른 나라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선제 핵 불사용 독트린까지 밝혔다. 핵보유국 선언에 이어 핵보유국 행세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말 그대로 신년사 일뿐이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아, 이제 남북의 긴장 관계에 변화가 올 것이고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 핵단추를 들먹이며 미국을 위협하는 그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만큼 힘과 용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 해 겁먹을 필요도 없다. 

신년사란 게 통상 기업이나 단체의 장이 빤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포함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마법을 걸어놓는 요식 행위란 사실을 아는 이는 다 안다. 만약 신년사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적자를 내는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거짓과 선동으로 가득 찬 ‘종이쪽지’로 무시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국민 모두가 지난 시기 그가 저지른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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