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불모지 한국서 역사 새로 쓴 정현… 호주오픈 남자단식서 첫 4강 진출 쾌거
테니스 불모지 한국서 역사 새로 쓴 정현… 호주오픈 남자단식서 첫 4강 진출 쾌거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8.01.26 10:45
  • 호수 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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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1월 24일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3-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오른 것은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 앞선 8강 진출도 정현이 최초였다.

지금까지는 지난 1981년 이덕희가 US오픈 여자단식 16강에 오르고, 이형택이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1905년 출범한 호주오픈에서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일본의 사토 지로가 유일했다. 

정현은 1월 22일 열린 16강전에서 자신의 우상인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를 만났다. 조코비치는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함께 세계 테니스 왕좌를 다퉜던 스타 플레이어다. 이름값에 기가 눌릴 법도 한데, 그는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내고 자기 플레이를 펼쳐 거둔 성과다.  

8강전에서 미국의 복병 테니스 샌드그렌을 상대로 정현이 거둔 성적 또한 3-0 완승이었다. 2세트 중반,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3-0 완승을 거뒀다.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은 박세리의 LPGA 첫 우승,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등에 버금가는 값진 성과다. 테니스는 서구인의 체력 조건에 최적화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현은 고된 훈련과 인내로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 했다.

정현은 어릴 적부터 고도 근시와 난시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테니스를 시작한 계기였다. 테니스 코트가 눈에 좋은 초록색이라 테니스 선수 출신인 아버지가 시력으로 고생하는 아들에게 테니스를 권한 게 출발점이었다. 어찌 보면 테니스 선수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음에도 오늘의 쾌거를 이룬 것은 그의 투지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의 승리가 더욱 값지다. 

인상적인 것은 경기뿐만이 아니다. 세계 수준의 실력은 물론 자신감, 영어, 세련된 매너, 유머감각까지 보여줬다. 정현은 메이저대회 4강 신화를 일궈낸 직후 코트 인터뷰에서 “마지막 경기 매치포인트라는 역사적인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세리머니 때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고 말해 관중들을 폭소케 했다. 

16강전에서 조코비치를 누른 뒤 중계 카메라 렌즈에 전 삼성증권팀 감독에게 ‘캡틴 보고 있나’라고 썼던 정현은 8강전이 끝난 뒤엔 ‘충(CHUNG· 영문 성 표기) 온 파이어’라고 한글로 적어 ‘난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의미를 국내 팬들에게 전했다. 큰 경기에서 승리하면 일단 울음부터 터뜨리고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해 관중 앞에서 한마디를 못해 쩔쩔맸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정현은 오는 26일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결승 티켓을 놓고 4강전을 펼친다. 페더러는 지난해 이 대회 우승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만 19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린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정현이 페더러를 꺾고 결승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남은 준결승전 혹은 결승전의 결과가 어떠하든 빛이 바래지는 일은 없다. 앞으로 스물두살 청년인 정현이 내딛는 걸음마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현 신드롬으로 한국 테니스는 앞으로 골프의 ‘박세리 키즈’, 피겨의 ‘김연아 키즈’처럼 ‘정현 키즈’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정현은 16강전에서 조코비치에게 이긴 뒤 인터뷰를 통해 “오늘은 나에게 많은 꿈 중 하나가 이뤄진 날”이라고 했다. 그가 꿈을 하나씩 이뤄가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도 함께 꿈을 꿀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 정현의 잇단 승전보가 높은 청년실업률에 꿈을 포기하고 사는 우리 청년들의 저력과 패기를 일깨우는 희망가로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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