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여검사 성추행 피해 폭로로 ‘미투 캠페인’ 확산… 갑질 성범죄 뿌리 뽑아야
현직 여검사 성추행 피해 폭로로 ‘미투 캠페인’ 확산… 갑질 성범죄 뿌리 뽑아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8.02.02 11:36
  • 호수 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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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여성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가 한국판 ‘미투(Me, too) 캠페인’으로 번질 조짐이다. 이에 따라 성범죄와 관련해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우리 사회가 개선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의 서지현 검사는 1월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지난 2010년 10월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서 검사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가해자는 지난해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러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다. 서 검사는 2010년 당시 한 장례식장에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동석한 상태에서 안 검사로부터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지만 많은 이들이 보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 검사가 8년이 지나서야 이런 사실을 폭로하게 된 배경이 더 기막히다. 당시 성추행 사실을 법무부에 알렸지만 “검사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있으라”는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그들이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또한 서 검사는 오히려 이 사건 이후 갑작스런 사무 감사와 검찰총장 경고,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성추행 사건을 앞장서서 덮은 것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검찰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검찰 내 성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후배 여성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면직 처분됐고, 2015년 서울북부지검에서도 부장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껴안았다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2011년에는 현장 실무교육 중이던 여성 사법연수생을 성추행한 검사들이 대거 징계를 받았으며, 2014년에는 목포지청 검사가 동료 여검사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의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았다. 쉬쉬하며 어물쩍 넘긴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에 대검찰청은 1월 31일 서 검사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단을 발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조만간 서 검사와 안 전 검사장를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주영환 대검 대변인은 “서 검사 성추행 사건 뿐 아니라 검찰 내 성추행 의혹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이라는 검찰에서도 이 정도인데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등이 직장 내 성범죄 피해 신고를 받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조직 내 성범죄가 빈발하고 근절 대책을 내놓아도 구두선으로 그치는 이유다. 

서 검사는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었다”며 “10년 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미투 운동이 세상에 큰 경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검찰) 내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발걸음라도 됐으면 하는 소망, 간절함으로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쓴다”고 했다. 

이에 SNS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폭로가 잇따르면서 한국판 ‘미투 캠페인’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건 재수사와 당사자 처벌을 요청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고, 온라인에는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며 ‘#Me too’ 해시태그를 단 네티즌들의 응원이 확산 중이다. 

뿌리 깊은 남성중심 사회와 특유의 폐쇄성이 더해진 조직문화 속에서 성적 수치를 감내해야 했을 여성들의 이중, 삼중의 고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 대학 등 다양한 영역의 공간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성폭력 피해에 노출돼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성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서 검사가 쏘아 올린 미투 캠페인으로 우리 사회의 뒤틀린 성추행 관행이 뿌리 뽑힐지 주목된다. 그러나 단순히 SNS 인증을 통한 운동, 혹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감만으로 바뀌는 건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성폭력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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