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4] 힘들다 말할 용기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4] 힘들다 말할 용기
  • 김 혜 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 승인 2018.02.09 11:21
  • 호수 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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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말할 용기 

옛 사람이 비록 ‘천명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안다[樂天知命]’고 했으나 실로 억지로 한 말인 듯합니다.

우리의 일은 설사 옛사람이 당했더라도 천명을 즐거워하고 운명을 알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古人雖曰樂天知命(고인수왈낙천지명) 亦恐此強言也(역공차강언야)

吾輩之事(오배지사) 縱使古人當之(종사고인당지) 有不暇樂焉知焉也(유불가낙언지언야)

- 신흠(申欽, 1566∼1628), 『상촌고(象村稿)』 권34 「서독(書牘)」「청음 김상헌에게 부치다 [寄淸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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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이 김상헌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당시 조정에서 물러나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차에 김상헌이 유배를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신흠은 편지로 위와 같이 말했다. ‘낙천지명(樂天知命)’은 『주역』「계사전」의 “하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樂天知命 故不憂]”에서 나온 말로, 본래 슬픔이나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데 많이 쓰였다. 그런데 신흠은 이 말에 딴지를 건다. 옛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고통을 감내하자는 취지의 어조가 아니라 옛 사람이라도 우리의 힘든 상황을 버텨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공감의 어조를 취한 것이다.

『맹자』「고자」편에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그가 행하는 일마다 어긋나서 이루지 못하게 하니, 이는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의 성질을 굳게 참고 버티도록 하여 그가 잘하지 못했던 일을 더욱 잘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발판이며 이 역경을 이겨내면 더 큰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에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많이 하곤 한다. 틀린 말이라곤 할 수 없지만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은 정말 그 사람을 위함인가? 그 시련은 참는다고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

몇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유행하더니 얼마 전에는 그 반대로 “아프면 환자지”라는 방송작가 겸 코미디언 유병재의 말이 인기를 얻었다. 젊은이들은 그동안 힘든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참아내는 데 너무 익숙해져왔다. 왜 아파야 청춘인가. 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가?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일면서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은 무용지물처럼 되었다. 이제는 충분히 알 것이다. 누군가 겪고 있는 시련들이 그를 큰사람으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며 그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도 아님을.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에게 부족한 건 노력이 아니다. 힘들다 말할 용기다. 신흠의 말이 조금 불경했다면 어떤가. 옛 사람의 ‘낙천지명’보다 속 시원하지 않은가. 누구보다 노력하며 고생하고 있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참지 않아도 돼. 힘들다고 말해도 돼.”    김 혜 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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