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불편하다구요?
‘미투 운동’이 불편하다구요?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8.03.02 09:41
  • 호수 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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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가슴앓이 하던 그녀들 

‘폭로’ 통해 성범죄 고발 

 미투운동은 점점 확산될 것

 그동안 관행이라며 저질렀던 짓

 우리사회 더는 용납하지 않아

엊그제 남편과 함께 종로 피맛골에 있는 그 유명한 청진동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도 깔끔하고 현대적으로 바뀌어 낯설기만 했다. 

맛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해장국에 파를 듬뿍 넣어 잘 섞은 다음 선지를 숟가락으로 떠서 부지런히 입에 넣고 있는데 옆 테이블이 시끌벅적 매우 소란스러웠다. 70대 중반쯤 됐을까. 잘 차려 입으신 노신사 서넛이 ‘미투(Me, too) 운동’ 에 대해 열을 올리고 계셨다. 

“아니 세상에 술자리에서 한두 번 여자 주물러보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남자가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야 남자 아냐? 그렇게 싫으면 여자들은 왜 술자리에 앉아있는 거냐고. 지들도 그러면서 다 이익도 보고 승진도 하고 혜택도 좀 받고 다 그러는 거 아닌가? 그것도 윈-윈(win-win)이야. 괜히 다들 유난떨고 난리야.”

헐. ‘할아버지, 어디 가서 그런 말하시면 큰일 나요. 그리고 성희롱이 싫은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그런 술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는요, 괜히 잘못 보여 회사라도 쫓겨날까봐 그게 두려워서 눈물을 삼키며 앉아있는 것이거든요. 좋아서가 아니라 죽기만큼 싫은데도 살아 남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할아버지, 조심하세요. 괜히 싫다고 말하거나 고발이라도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침묵했던 그녀들이 이제 막 입을 열기 시작했거든요. 행여 관행 운운하며 희롱했다가는 된통 망신 당하시고, 그동안 이루어 내신 명예며 권력이며 가정까지도 다 물거품이 되실 수 있으니 말이에요’라고 말할 뻔했다. 

하마터면 정말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간질거리는 목구멍에 애꿎은 선짓국만 들이붓고는 씁쓸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왔다. 

‘미투운동’이 요즘 장안의 화제다. 굳이 번역하자면 ‘나도 그래’, ‘나도 해봤어’이고 좀 의역해 보자면 ‘나도 당했어’란 말인데, 2017년 10월 성폭력이나 성희롱 퇴치를 위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운동이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은 피해자이지 결코 부끄러워 숨어야 할 죄인이 아니기에 당당하게 그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가해자는 벌을 주고 잠재적 가해자에게는 미리 겁을 주어 결국에는 성폭력을 뿌리째 뽑아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만든 사회운동인 셈이다. 그 후 이제껏 피해 사실을 숨겨 왔던 여성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폭로에 힘을 얻고는 이제야 슬슬 닫았던 입을 여는 중이다. 

검찰과 법무부 장관이 동석한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미투운동. 검찰 내부로부터 시작해 이제는 체육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학계, 그리고 군대 내의 성폭력까지…. 차츰차츰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노벨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셨던 분, 인간문화재, 내가 학창시절부터 줄곧 존경해왔던 연극계의 거물이신 오XX님, 그리고 연극계의 대왕마마격인 이XX님, 새 드라마 오픈을 목전에 둔 배우까지. 

그저 성희롱인지 아니면 성폭력인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폭로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거부를 안 해서 그녀도 나와 같은 맘인 줄 알았다”, “성폭력은 있었으나 강제는 아니다”, “가슴으로 연기하라는 의미로 가슴을 만졌다” 등 별 뜻 없이 늘 하던 대로 관행이라 여겨 한 짓이기에 상대방이 받았을 상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가해자들의 변명들. 

하지만 당한 그녀들은 달랐다. 그 사건 이후 대인공포증이 생긴 사람도 있고 성추행 당한 날 응급실을 찾은 사람도 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십년 이상 가슴앓이를 해 온 사람도 있다. ‘그날 그의 손은 내 몸을 기어 다니는 온몸이 미끌미끌한 구렁이였다’며 아직도 자주 놀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숨어서 끙끙 앓던 그녀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고 있는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등단이나 학점, 데뷔 등의 권력을 가지고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이었다. 

힘없는 자를 유린하고 약자를 먹잇감으로 삼아 괴롭히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자들이다.  

올림픽을 보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가 이제 확실히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드론으로 만든 반딧불이 개막식 공연도 멋졌고, 아이스링크의 아이스 질도 세계최고라 한다니 그것도 신나고, 최첨단 아이티(IT) 기술을 동원한 방송도 멋지고. 모든 게 다 우리 선수들이 딴 금메달만큼이나 자랑스럽다. 

관행이라 여기며 무심코 해오던 행동들, 이참에 꼼꼼히 따져보자. 드디어 자랑스러운 선진국에 걸 맞는 선진화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회식자리마다 새내기 여직원을 옆에 앉히고 상사가 성추행을 일삼는 것을 관행이라 하면서 참고 견디라고 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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