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 이상룡 전 노동부장관 "'역사의 창조'란 말 좋아해... 그 정신으로 일했다"
[인물 포커스] 이상룡 전 노동부장관 "'역사의 창조'란 말 좋아해... 그 정신으로 일했다"
  • 관리자
  • 승인 2008.02.29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무부 지방교부세 담당업무 통해 형평과 균형의 도 터득

“주요핵심 부서 역임하며 승승장구한 노하우 희생과 자제”
교육경쟁력 확보 위해 강원도지사로 고교입시 평준화 폐지
공정·투명, 법과 원칙 지키고, 나라 생각하는 마음 있어야

 
개발시대와 고도성장기에 정부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청춘을 보낸 전직 고위 관료들은 오늘의 정부, 관료들에게 할 얘기도 많고 훈수할 거리도 많다. 역경을 헤쳐온 경험을 어찌 다 필설로 설명할까. 이번 호는 서기관 시절 5년여를 박정희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보내는 등 국정의 주요 현안을 다루며 40여년을 공직에 몸담아 온 이상룡 전 노동부장관을 만났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32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신사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지금도 집무중인 듯이 셔츠와 넥타이를 맨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이 전 장관은 고려대학 동기인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이 작고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가 없게 된 뒤 얼마 전 만나 필담을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3년 6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끝으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칠 때까지 5대 정권 9개 기관을 거치며 많은 일을 했다. 지난 2006년에 공직생활의 경험을 <소신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다>라는 책으로 묶어 출판했다. 요즘은 책에 수록하지 못한 자료를 찾아 컴퓨터에 입력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지요 
“내무부에서 가장 힘들다는 지방교부세계에서 5년을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20~30조 정도의 예산을 혼자 처리했다. 시장 군수들은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고, 나눠주는 나는 형평과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누가 와서 묻거나 항의해도 자신이 있을 만큼 일처리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때부터 ‘내가 힘써서 너를 도와줬다’는 말을 해본 일이 없다.”

- 40여년을 주요부처에서 핵심적인 역할과 업무를 수행하게 된 노하우라면….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제할 줄 알고,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을 다 바꾸고 누구 하나만 남긴다 할 때에도 살아남는다. 직업공무원으로 성공했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 공직생활에서 늘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인지요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쓰던 ‘역사의 창조’라는 어휘를 좋아한다. 적극적인 뜻으로 이해하며 지켜왔다. 강원도지사, 건교부차관, 노동부장관 건보공단 이사장 등 주요직을 수행하면서도 그런 정신을 지키려 노력했다.”


- 강원도지사시절 고교입시 평준화제도를 폐지한 일화가 지금도 회자됩니다.
“강원도는 도세가 약하다. 어떻게 하면 도세를 신장할 수 있을까. 그 대안이 ‘향토인재양성‘이었다. 그게 고교 평준화 폐지의 배경이다. 관련 기관이 반대했지만 강행했다. 교육경쟁력 확보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 없었다. 일본·미국·독일은 이미 교육정책을 ‘우수인력 육성‘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 전교조가 기세등등하던 시기이고 학생들도 반대했을 텐데...
“심지어는 도지사인 내가 추진하고 있는데, 비서실장의 부인이 자기 딸의 손을 잡고 반대시위에 나갔다. 지역안정을 걱정하는 주변기관은 '평준화 폐지 1년 유보'를 들고나와 도지사를 압박했으나 평준화를 폐지하고 향토인재 육성 기반을 구축했다.”


- 노동부장관을 지내시고, 건보공단 이사장도 역임하셨습니다. 노사관련 뒷이야기도 오늘의 정부나 노조에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난마를 풀어낸 것처럼 복잡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노사관계는 공정·투명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법과 원칙을 일관성 있게 엄격히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또 정부 산하 기관장의 '이면합의'는 뿌리채 뽑아야 한다.새 정부가 잘 하리라 믿는다. 노조에도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적 대사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된다.”


- 강원도지사시절 강원도에 올림픽 기념물을 설치했고 거기 남다른 애착이 있는데.
“88서울올림픽은 나한테는 특별한 이벤트다. 전두환 대통령 때 시작한 줄 아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였다. 서울시 교통문제를 해결하려고 88올림픽을 꺼내들었다. 문교부를 제외한 전정부가 반대였다. 정상천 당시 서울시장과 김택수, 박종규 IOC위원 등 3분이 신청서를 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자면 그때 지하철 3, 4호선 23개 공구를 동시착공해서 부러 욕을 먹은 면이 있다. 정부 재정지원 대신 지하철공채 신설을 얻어냈다. 결과가 사상 유례없는 대성공이라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올림픽을 할 땐 강원도지사였고, 그래서 조형기념물도 많이 만들고 촬영하여 화보로 출간해 보관하고 있다.”


 - 건보공단 이사장 시절에도 개혁을 계속했다고요.
“당시 노조 중 제일 큰 조직이었다. 1만 2000명 직원 중 노조가 8200명인데 복수노조였다. 민주노조 5000명. 한국노총이 3200명이었다. 내가 이걸 바로잡았다. 우리 집 앞에까지 와서 데모를 했으나 결국 내가 뜻을 이뤘다. 납부 마감일을 조정하는 등 개혁도 했는데, 건강보험증을 폐지하지 못하고 물러나온 것은 아쉽다. 지금은 보험증이 거의 쓸모가 없게 됐는데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해 20억여원, 200여명의 인력이 소요된다.”[백세시대=관리자]

- 이런 개혁을 성공한 옛 경험이 있다면 어떤…
“산림청이 한 10여년 정도 내무부 산하 기관이 된 적이 있다. 역점시책인 산림녹화가 안 돼, 불도저로 불린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맡긴 것이다. 내무부가 인수하자마자 '식목중심을 육림중심'으로 바꾸었다. 뿌리를 내려 사는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산림녹화사업을 추진하자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오늘의 무성한 수풀이 그래서 가능했다.”


- 건강은 어떻게 챙기시는지.
“부모님으로부터 건강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운동으로는 40년 동안 조깅과 테니스를 쳤다. 건강하려면 운동과 음식물 섭취 등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밥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싱거운 식성이 좋다. 이런 원칙을 지킨다.
(식탁 가까운 벽에 ‘7가지 행복’, ‘고혈압 환자를 위한 저염주간식단표’ 등이 붙어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고령화 시대이니 노인을 대변하는 활동도 할 수 있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서 자료 정리하고 그럴 것이다. 노인 숫자가 많으니 노인 대표가 국회에 나갈 필요는 있다. 대변하는 책임자들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사람들한테 맡길 일이다. 그들이 했으면 한다.

박병로 기자 roparkk@100ssd.co.kr


※이상룡 전 장관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내무부 지방국
대통령비서실 (서기관)
서울시 기획관리관 세무국장
산림청 기획관리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제도개선)
내무부 재정국장 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강원도지사(26대, 29대)
건설부 차관
국토개발연구원장
관동대 교수
노동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근정훈장(녹조, 홍조, 황조, 청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