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뭣이 더 중한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뭣이 더 중한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3.23 11:18
  • 호수 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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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혐의로 구속 위기에 몰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근황은 비참했다. 3월 9일, 검찰 조사를 받고나서부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도권 야산의 컨테이너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안 전 지사가 기거하는 컨테이너의 크기는 20㎡ 남짓. 방 한 칸과 화장실이 전부다. 방바닥에는 난방용 전기선이 깔려 있다. 

안 전 지사는 거의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가끔 이불을 털거나 인근 개울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장면이 목격됐다. 안 전 지사는 밤에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새벽에 혼자 깨는 경우가 많다. 

안 전 지사의 부인과 아들 역시 컨테이너 부근의 한 지인 집에 머물고 있다. 식사 때마다 안 전 지사는 부인과 함께 했다. 부인이 원망 섞인 말을 내놓을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듣기만 했다고 한다. 부인에게 거주 공간을 제공한 지인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인은 안 전 지사가 두 아들들과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퍽’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지인은 “안 전 지사가 아들이 밖으로 나갈 때마다 영영 이별하는 것처럼 한도 끝도 없이 배웅하는 모습이었다”는 말도 했다.

미투 운동에 이름이 거론된 남자들 대부분은 안 전 지사와 같은 고통과 신음 속에서 지낼 것이다. 사회와 친지와 격리된 채 가족들로부터 원망과 책망을 들으면서 생사 여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자문(?)을 마치고 최후의 길을 선택한 이들(조민기, 외대 교수)도 나타났다.  

미투 운동의 와중에 피의자, 피해자 모두가 치명적인 2차 피해를 당하는 걸 보면서 대책의 시급함을 느낀다. 미투 운동의 최종 목적지가 여성이 존중되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 구현이라지만 인간의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다. 종교, 이데올로기, 윤리, 양심, 진리, 정의 등 인류가 선의 가치를 부여하고 추구해온 것들일지라도 그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 

미투 운동의 목적이 실현됐다고 치자.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피의자들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아서, 여성을 낮추어 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 남자의 성 충동과 여성 존중, 남녀평등은 별개의 문제이다. 

남자들은 때때로 학식, 교양, 지식, 상식, 경륜을 무시한 채 성충동에 사로잡혀 정신 줄을 놓는다. 일순간에 괴물로 변하는 성적 DNA를 갖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남성의 성은 즉흥·능동·외향적이며,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고, 걔 중에는 밥보다 섹스가 좋다는 이도 있다. 루게릭병으로 사지가 뒤틀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결혼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호킹 박사도 70세 때 “요즘 무얼 생각하느냐”고 묻자 “여자다. 미스터리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여성은 그에 반해 소극·수동·내향적이다. 여성의 성은 단단히 봉쇄돼 있었다. ‘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설도 먹혔던 시대가 있었다. 심지어 “사랑 없는 성은 불가능하며, 성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많은 여성들을 성녀(聖女)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조물주는 불행하게도 지구상에 공존하는 두 생물체(남녀)에 전혀 이질적인 성 정체성을 갖게 했다. ‘왜 그렇게 서로가 힘들게 만들어놓았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걸 누굴 탓하겠는가’라고 자조할 뿐이다.  

국가와 국민이 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존경 받는 법조인들이 길거리에서 해괴한 짓을 하고, 후배검사를 성폭행하기까지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심도 있게 논의해보아야 한다. 왜 어떤 남자는 성희롱·폭행·폭력을 일삼는데 어떤 남자는 그러지 않을까. 그런 것도 생물학·심리학적으로 실험·연구해야 할 시점에 왔다. 폭로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 식으로 결과만 놓고 단죄할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일탈’이라고 입막음하기엔 사회적인 파장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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