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 타계 뒤 일어난 놀라운 일들
재벌 회장 타계 뒤 일어난 놀라운 일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5.25 13:49
  • 호수 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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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에서 고인의 인품 두고 칭찬 일색

재벌 회장의 타계에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진심에 가득 찬 애도가 줄을 잇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 5월 20일 운명한 구본무 LG그룹 회장(1945~2018)의 얘기다. ‘새 박사’에서부터 유엔 사무총장, 심지어 재벌 총수라면 비판일변도인 좌파 신문까지 그의 인품과 처신을 높이 평가해 놀랍기만 하다. 그의 부음 기사에 달린 댓글도 칭찬 일색이다.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비서로부터 초청 전화를 받고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다. 매주 토요일 만나 독일제 쌍안경으로 한강 밤섬을 관찰하며 새 공부를 했다. 고인은 기억력이 좋아 새 이름을 가르쳐주면 다음 주에 모두 기억하곤 했다. 한번은 ‘북한의 새’를 다룬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구해다주었다. 트윈타워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면 ‘부인과 아이들도 모시고 오라’고 권하던 정 많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해외 출장길 비행기에서 구 회장을 만났는데 내 자리 독서램프가 고장 난 것을 알고 ‘나는 자료를 안 봐도 된다’며 자리를 바꿔줬다”고 기억했다. 구 회장은 총장 사무실에 LG전자 제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기자칼럼을 통해 “구 회장은 다른 재벌기업 총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상에 덜 알려졌고 평소 행보도 조용했다. 생전 포토라인에 한 번도 선 적 없고 갑질이나 그룹 승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고 썼다. 

인터넷 댓글 중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베스트댓글은 ‘돈도 많은 양반이 저 정도면 나쁘지 않다. 타 회사나 권력자들이 갑질하는 것에 비하면 진짜 양반이다’였다.

구 회장은 평소 언론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선행도 사후에 비로소 알려졌다. 

그는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에게 LG복지재단을 통해 매달 수백만원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40여년 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봐온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84)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83)이다. 고인은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먼저 제안한 뒤 현재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두 간호사는 수차례 거절했지만 구 회장이 거듭 설득해 지원 받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이 값지게 보이는 건 연명치료를 거부했고 매장이 아닌 화장을 선택한 점이다. 그는 뇌종양으로 1년여 투병 끝에 임종에 이르기까지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면서 인공호흡기나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중환자실이 아니라 일반 병실(1인실)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구본무 회장의 호는 화담(和談)이다. ‘정답게 얘기한다’는 뜻이다. 생전의 그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133만㎡ 규모의 숲을 조성했다. 숲의 이름은 그의 호에서 빌려와 ‘화담숲’이다. 산책길은 데크를 깔아 보행이 불편한 이도 가족과 함께 다닐 수 있게 했다.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해 입구서부터 전망대까지 모노레일도 설치했다. 지난해 4월 뇌수술을 받은 후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구 회장의 유해는 인근 지역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진다. 수목장은 골분을 나무 밑이나 주변에 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연 친화적이며 봉분, 비석, 상석도 없다. 영국 스위스 일본 등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유가족이 수목장을 선택한 건 구 회장이 생전에 숲을 가꾸는데 많은 정성을 쏟는 등 자연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점 때문으로 보인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수목장을 선택한 이가 구 회장이 최초인 점에 비추어 앞으로 장묘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휠체어 타고 검찰 포토라인에 서온 재벌 총수들만 보아오다가 대중의 사랑과 찬사를 받는 구 회장의 운명 소식을 접하자 안타까우면서도 신선하며 한편으론 따뜻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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