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마하티르 총리(93)와 김형석 교수(98)가 보여준 노익장의 의미
[특별기고]마하티르 총리(93)와 김형석 교수(98)가 보여준 노익장의 의미
  • 이심 15대, 16대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 승인 2018.06.08 14:37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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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15대, 16대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이심15대, 16대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7%를 넘어서는 ‘노령화사회’에 진입한 이래, 작년 말 공식적으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에 진입하였다. 앞으로 8년 뒤인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처럼 빠른 노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이 모든 지표들이 대한민국 대표 노인단체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마치 내 책임인 듯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여타의 의존성을 가능한 줄이는 ‘주체적인 노년상’의 담론에 관심을 쏟아왔다. 그 과정에 접하게 된 구순(九旬)을 훌쩍 넘긴 마하티르 총리와 김형석 교수가 보여준 식지 않은 열정이 우리에게 교훈과 희망을 건넨다. 

‘최고령 총리’로 다시 집권한 마하티르

얼마 전, 93세인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총선에서 현 총리를 누르고 다시 집권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2년 동안 말레이시아를 통치한 뒤 정계를 은퇴했던 마하티르 총리가 부패 척결과 민생경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총리직에 복귀한 것이다. 2003년 당시 78세에 총리에서 물러난 지 무려 15년 만의 일이다. 1981년에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마하티르 총리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 개발을 모델로 삼은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으로 말레이시아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퇴임 후, 조용히 노후를 보내던 그는 후계자인 총리가 나랏돈을 빼돌리는 스캔들에 연루되자 퇴진 운동의 전면에 나서면서 다시 정치계에 등장한 것이다. 
세계 현대정치사에 93세에 이르는 고령의 정객이 정권을 다시 거머쥐는 흔치 않은 장면으로 남을 듯싶다. 그와 같이 생물적 연령을 거스르는 이들을 가리켜 흔히들 ‘노익장(老益壯)’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한자는 실은 중국 고사 속의 주인공인 ‘마원(馬援)’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마원은 동한(東漢)의 명장으로 반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매우 뛰어난 장수였다. 그를 표현하는 말이었을까. 『후한서(後漢書)』에 “窮當益堅 老當益壯 [궁핍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며, 나이 먹을수록 더욱 강해져야 한다]”이라는 기록이 원전으로 전해지는데, 그 뜻에 대한 해석이 조금은 다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노익장’이라는 말은 나이 들어서도 왕성한 능력과 자태를 뽐내는 사람에게 쓰는 찬사에 가깝다. 그러나 원문의 본뜻은 ‘궁핍한(窮) 상황에 놓이더라도 마땅히(當) 더욱(益) 단단해지고(堅), 나이 들어서도(老) 마땅히(當) 더(益) 왕성하게(壯) 가다듬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원래 이 두 마디 앞에는 “丈夫爲志 [사내가 뜻을 다짐에 있어서는…]”이라는 전제가 놓여 있었다. 따라서 노익장에 대한 원문이 품은 올바른 의미는 바로 ‘마음가짐’에 관한 권유로 여겨진다. 결국, 늙더라도 마음만은 젊게 유지하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마하티르 총리 역시 한 인터뷰에서 늘 정신적으로 깨어 있고,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최고의 건강 비결로 꼽았다. 2003년, 앞선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 꾸준히 활동을 펼쳐왔던 차였다. 그는 “나는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잠이나 푹 자고 싶다든가, 은퇴해서 내세를 준비한다는 말은 내게 도리어 이기적으로 들린다”는 그의 노익장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줄 만하다.
흔히들 지금을 ‘백세시대’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100’이라는 숫자는 아득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정말 백년을 산다면 인생은 또 어떻게 다가올까? 그러나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살이에 기대되고 설레기 보다는 왠지 불안하고 허둥대기 바쁘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행복인가 등, 삶에 주어진 질문도 여전히 막막하다. 

삶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이러한 때,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삶을 관통하는 지혜와 철학적 사유를 담은 저서인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었다. 1920년생인 그가 96세 나이에 8개월 동안 매일같이 손글씨로 써서 내놓은 책이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 철학계의 1세대 교육자로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가르치고, 미국 시카고대와 하버드대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한 철학자이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젊은 학자 못지않게 활발한 집필과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걸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저서에서 그는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깨달은 삶의 실타래를 담담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풀어준다. 굳이 철학적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철학을 일깨우고, 신학적인 해설이 아니더라도 깊은 종교관의 울림을 전한다.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생을 통찰하는 그의 관점이다. ‘매일 매일 시간만 보내는 노인이 아닌 위엄 있게 삶을 증거하고자 노력하는 노인’으로 살아가는 현자(賢者)의 말씀에 절로 귀 기울이게 된다.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막상 ‘행복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세상에 같은 답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놓이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행복과 성공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한다. 부와 권력, 명예를 얻으면 행복하고, 실패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더욱이 나이가 들수록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단정 짓기 쉬운데, 노령의 철학자가 말하는 성공과 행복의 함수 관계는 사뭇 다르다. 
김 교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그는 또 말한다. “젊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장년기에는 신념이 있어야 하나, 늙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한 젊은 늙은이가 많다며 작금의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생산적 노년 혹은 성공적 노년의 과제

대한민국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영역의 노인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도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 그리고 고령화 속도가 1위인 국가이다. 노인의 빈곤과 질병, 복지 등의 문제는 언제나 잠재한 가운데, 건강하고 활동성을 가진 노인들의 사회 참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과제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런 만큼 최근 ‘노년학(gerontology)’의 주요 연구 주제 역시 ‘생산적 노년’ 혹은 ‘성공적 노년’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는 꾸준한 건강관리를 통해 인지능력을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교육이나 학습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는 노년을 지향한다. 그로써 의미 있는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노년기의 자아실현을 이루는 참다운 삶을 말한다.
모든 노인이 앞서 마하티르 총리나 김형석 교수와 같은 노익장을 발휘하며 삶을 구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방향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그와 같은 인생관과 가치관을 공통분모로 개인과 사회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이다. 
진정한 생산적 노년, 성공적 노년의 정착을 위해서는 이제껏 잘못 인식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년기는 고독하고 의존적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에서 탈피해 생산적이고 활기차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새로운 노년 문화를 조성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나이 들어 늙어감에는 나름의 처연한 미학이 있다. 부풀렸던 욕심을 줄이고, 벌렸던 관심사를 줄이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부귀와 명예를 쫓기 보다는 단단한 결실로 원숙을 선보이고, 남과 나누는 베풂의 미덕도 요구된다. 아울러 노년의 고독과 소외감을 떨쳐버리고 닫힌 삶을 열린 삶으로, 수동적인 삶을 능동적인 삶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노익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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