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야생화 (1) 능소화와 접시꽃]능소화는 기품이 있어 ‘양반꽃’이라 불려
[이야기가 있는 야생화 (1) 능소화와 접시꽃]능소화는 기품이 있어 ‘양반꽃’이라 불려
  • 김순근 기자
  • 승인 2018.06.22 15:11
  • 호수 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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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상민이 몰래 능소화 키우다 곤장 맞기도

접시꽃은 서민의 꽃… 애절하고 열렬한 사랑 상징

[백세시대=김순근기자]

능소화
능소화

능소화는 7월을 전후해 피는 꽃이다. 지금은 시골집 마당이나 담벼락 등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옛날엔 달랐다.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는 귀한 꽃이었다. 그래서인지 능소화는 기와집 담벼락과 잘 어울린다. 

담장을 덮은 능소화가 넝쿨을 타고 담 밖으로 주홍색 꽃을 주렁주렁 떨어트린 모습은 마치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양반댁 규수가 담밖 세상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능소화는 동백꽃처럼 한창일 때 톡하고 떨어진다. 동백꽃의 이 같은 습성에 ‘잘 나가다 망한다’는 속설이 생겨 사업하는 이들은 집안에 동백꽃을 들여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양반들은 능소화의 이 같은 모습에 사대부의 기품과 기개를 본 모양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낸 꽃이었고 키우다 발각되면 양반을 능멸한 죄로 곤장을 맞았다고 한다.

능소화의 꽃말 중에 명예가 있다. 옛날 문과에 장원급제한 사람이나 암행어사의 모자에 꽂은 꽃이라 하여 어사화라 불리기도 했다. 어사화는 종이로 만든 꽃으로, 다홍색·보라색·노란색 등의 종이꽃을 달아서 모자 뒤에 꽂았는데 이 꽃이 능소화처럼 생겨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 같은 연유인지 능소화 꽃은 중후하고 기품이 있으며 은근히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다. 꽃이 피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모습에서 자신감마저 느껴진다. 

태양을 향한 능소화의 주홍빛 꽃잎에는 그리움에 지쳐서 빨갛게 멍든 동백꽃 순정 같은 애절한 사연도 담겨있다.

옛날 왕의 사랑을 받는 ‘소화’라는 아름다운 궁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발길이 끊겼고 소화는 날마다 마당을 서성이고 담밖을 바라보며 왕을 기다렸다. 그래도 왕은 오지 않았고 그리움에 사무쳐 상사병이 걸린 소화는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여름 소화의 처소 담장에 꽃이 피어나 담장 밖으로 주렁주렁 매달렸다.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듯한 모습에서 왕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화가 떠올려져 능소화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능소화의 꽃말에 그리움과 기다림이 들어있다.

눈길을 끄는 기품 있는 꽃인 만큼 능소화를 관상용으로 심는 가정이 많다.  지자체에서도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데, 대규모 군락을 이룬 대표적인 능소화 명소가 경기도 부천 중앙공원이다. 매년 7월초면 주렁주렁 매달린 꽃과 바닥에 떨어진 주홍빛 꽃들로 인해 장관을 이룬다.

접시꽃
접시꽃

귀한 꽃으로 대접받았던 능소화와 달리 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서민 꽃도 있다. 능소화와 비슷한 시기에 피는 접시꽃이 대표적이다. 

납작한 접시처럼 생겼다고 하여 접시꽃으로 불리는데 이름 자체에서 서민적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능소화가 담장 안에서 고이 피는 꽃이라면 접시꽃은 담밖에서 아무렇게나 피어야 제격이다. 집앞 도랑이나 논두렁, 마을 어귀 등에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다양한 색으로 핀다. 그러나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능소화처럼 중후한 기품도 없다. 단지 소박한 아름다움이 서민들의 삶을 닮아 사랑받아온 꽃이다.

옛날 접시꽃이 필 때면 보리 베고 논에 벼를 심는 망종(芒種)을 지나 농사일로 가장 바빴다.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곱게 핀 접시꽃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을 듯 하다.

그런데 접시꽃의 꽃말은 애절한 사랑, 열렬한 사랑이다. 넝쿨로 자라는 능소화와 달리 2m 이상 자란 줄기에 층층이 열린 꽃이 먼 곳을 그리워하듯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일까.

‘애절하고 열렬한’ 접시꽃 사랑은 지금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에 잘 표현돼 있다.

도종환 시인은 1986년 발표된 시집 ‘접시꽃 당신’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과 애절함을 주옥같은 시로 풀어냈다. 

특히 ‘옥수수 밭에 당신을 묻고’라는 시에서 “살아평생 옷한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라고 회한하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 실제 이 시집이 나온 뒤  아내에게 선물하는 꽃 1순위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무튼 서민의 상징인 접시꽃으로 조명 받은 시인이 사대부를 대표하는  장관이 되면서 길가에 핀 접시꽃과 양반 댁 담장에 핀 능소화가 대비되며 묘한 뉘앙스를 안겨준다.

김순근 기자 skkim@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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