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검사가 사이코가 된 이유
김 검사가 사이코가 된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7.13 11:35
  • 호수 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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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술자리 내기에 검사들 불려나가기도

기자가 최근에 키득거리며 읽은 책이 ‘검사내전’(김웅·부키)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검찰 조직 생활과 기발한 범죄 수사로 가득하다. 김웅 검사는 전남 여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검사생활을 시작해 광주지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를 거쳐 현재는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있다.

김 검사는 술자리와 관련해 초임 시절 수모를 겪었다. 평소처럼 야근하던 어느 날 차장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차장검사는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하다 2차로 술집을 갔다. 그 자리에서 차장검사는 술기운에 내기를 했다.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차장검사는 김 검사에게 “검사들에게 연락해 나오라”고 했다. 김 검사는 각 부의 총무검사들(부서의 식사 메뉴와 식당을 정하는 막내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 자신은 일을 계속했다. 

다음날 난리가 났다. 아침에 차장이 부장들을 불러 싫은 소리를 하고 부장이 검사들을 불러 일장 훈시를 했다. 부장은 이 사건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차장이 더욱 화가 났던 것은 자기 전화를 받기까지 한 김 검사가 술집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장은 김 검사에게 이것은 “검찰의 단결심 문제”라면서 “술자리에서 차장이 부르면 달려가 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했다. 부장은 “그럴 때 달려가 주는 것이 단합이고 팀스피릿”이라고도 했다. 

김 검사는 그 정도로 그쳤으면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부장이 자기 이야기에 도취돼 갑자기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격군들이 이순신 장군의 지시를 잘 따랐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살짝 맛이 갔다. 

김 검사는 두 가지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은 장군이 아니라 제독이다. 영국의 해군 장성인 넬슨을 넬슨 제독이라고 하지 넬슨 장군이라고 하지 않듯이. 또 하나는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보더라도 어느 한 구절에도 술 마시다 부하장수나 격군들을 불러들이는 내기를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김 검사는 순간의 격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 주나요?”

그 일이 있고나서 김 웅 검사는 ‘사이코’란 별명을 얻었다. 

김 검사는 형사부에서 조사부로 옮기고 나서는 검사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조사부라고 해서 단순히 도서·자료 수집을 하는 부서가 아니다. 형사부는 일반 형사사건을 수사하고 조사부는 검사장이 명하는 복잡한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한다. 조사부는 좌석배치표나 인사말씀 같은 것을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일하다 행사장에 불려나갈 일도 거의 없다. 형사부처럼 각종 통계나 실적 자료 제출 요구도 없다. 그래서 매일 통계·실적 자료를 작성·취합하는 형사부 검사를 ‘통계청 주임’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김 검사는 “검찰도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한 번 만들어진 불필요한 제도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술과 관련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의 김 검사는 부장의 윤허(?)를 얻어 회식 때 폭탄주 예외자였다. 수석검사가 이를 못 마땅히 여겨 부장에게 “에이, 부장님. 술 받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다 마찬가지지요. 다만 저희는 의지로 마십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겠다며 속으로 칼을 갈았다.

하루는 체육행사로 등산을 가게 됐다. 등산 계획을 맡은 김 검사는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다섯 개의 섬을 종주하는 코스를 세웠다. 섬에 있는 산들은 대개 높이가 300m 정도라 가볍게 여기지만 실제로는 내륙의 500m 산보다 높다. 그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결국 수석검사는 퍼져버렸다. 김 검사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는 수석검사에게 다가가 악마처럼 눈을 번뜩이며 “형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의지력으로 올라가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후 김 검사의 별명은 ‘집요한 또라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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