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 ‘할머니학교’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성어르신 리더 길러낸다
서울 금천 ‘할머니학교’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성어르신 리더 길러낸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27 10:23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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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금천구 지난해부터 운영… 교육과정 개설부터 학생들 능동적 참여

3월~12월 주 3회 수업… 드로잉‧인문학‧특강 통해 지역 해결사 양성

서울 금천구에서 운영하는 ‘할머니학교’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여성어르신 양성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진행된 입학식 모습.
서울 금천구에서 운영하는 ‘할머니학교’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여성어르신 양성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진행된 입학식 모습.

지난해 7월 성공회대 대강당에선 ‘2017 인터아시아 문화연구국제학술회의’(IACS CONFERENCE)가 열렸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와 아시아 최고 석학들을 회원으로 보유한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홍콩)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에는 34개국 500여명의 학자가 참여해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 것은 ‘스쿨 오브 그랜드마(School of Grandma)’로 참여한 여성 어르신들이었다. 서울 금천구 ‘할머니학교’를 대표해 포럼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기존의 수동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할머니상을 제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세계 석학들과 뒤지지 않는 우리 할머니들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여성 어르신들이 제2의 인생을 행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울 금천구 할머니학교가 노인교육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강해진 현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기존과 다른 발전된 할머니상을 제시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금천구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할머니학교는 인문학을 기본으로 한 교육을 통해 여성 어르신들이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가 아닌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의 리더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존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프로그램이 체조, 노래교실, 정보화 등 일반적인 프로그램 위주로 교육을 구성했다면 할머니학교는 여성 어르신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정하는 등 학교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기존 금천구 지역에 개설된 노인 대상 강좌는 800여개에 이르지만 노인들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수업이 아니라, 노인이 직접 만들어 가는 강좌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이를 실행에 옮긴 결과가 할머니학교였다.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설립자로서 학교를 함께 운영하고 구에서는 학교 운영의 행정적인 부분만 주도하고 학칙제정, 주요 커리큘럼 구성 등 운영방식을 여성 어르신들에게 맡긴 것이다.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1기 학생들은 주 3회 수업에 참여해 근력 운동, 드로잉, 상상수업 3가지 과목을 들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끝까지 따라간 것은 아니다. 

처음 수강했던 26명 중 10명이 중도 포기할 정도로 어르신들에겐 생소했다. 근력 운동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드로잉과 상상수업은 파격적이었다. 예를 들면 여성 어르신들이 각각의 선반에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진, 옷, 그림 등을 올려놓고 이를 설명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는데 이런 방식이 생소했던 것이다.

윤부섭(66) 씨는 “기존의 평생교육 강좌와는 많이 다른 수업 내용에 적응을 못 해 중도 포기한 친구들이 있다”면서 “나도 첫 수업 때는 ‘할머니들한테 왜 이런 걸 시키지’라는 생각에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1기 졸업생 16명은 이후 초등학교에서 전래놀이 강사로 활동하거나 동주민센터 재활용정거장 사업에 참여해 환경보호에 일조하는 등 마을을 유지 발전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2배 많은 40명을 선발해 3월부터 12월까지(8월 여름방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 반응이 좋았던 드로잉 수업을 유지하고 자연에 대한 고민을 다룬 인문학 수업을 새롭게 개설하고 1기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매주 최신 트렌드와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를 쫓을 수 있는 특강을 마련했다.

지난 7월 25일 진행된 1학기 마지막 인문학 수업에서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김기돈 편집장의 강의가 진행됐다. 자연과 생태계를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짧은 강의와 학생들 간의 토론으로 진행된 수업은 시종일관 활기를 띠었다. 정답이 아닌 여성 어르신들이 저마다의 경험으로 각자의 결론을 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조혜숙(65) 씨는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할머니학교 수업을 통해 생각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강의 경우 이색적인 강의가 줄지어 진행됐다.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심보선 시인을 초청해 노인의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미투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이와 관련한 특강을 열면서 어르신들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했다. 특히 5월에는 파쿠르 특강을 진행해 주목받기도 했다. ‘파쿠르(Parkour)’는 프랑스어로 ‘길’이란 뜻으로 맨몸으로 도심과 자연환경의 장애물들을 뛰어 넘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다소 격한 운동이지만 기본동작인 ‘기어가기’, ‘도약하기’, ‘균형잡기’ 등을 실습하며 한계에 도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천구 관계자는 “할머니학교는 여성 어르신들이 스스로 노후를 보내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이자 공동체의 ‘지혜 창고’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종의 정거장”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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