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전, 청색과 암갈색으로 빚은 ‘오묘한 검정’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전, 청색과 암갈색으로 빚은 ‘오묘한 검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8.17 15:04
  • 호수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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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사위로 유명… 3번의 옥고 치른 후 ‘천지문’ 작품세계 선봬
윤형근 대표작 '청다색'(1976-1977)
윤형근 대표작 '청다색'(1976-1977)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8월 10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서니 독특한 문(門)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마(麻) 재질의 캔버스를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독특한 검정색으로만 물들인 ‘청다색’ 시리즈는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이색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김환기의 사위로 유명한 윤형근(1928~2007)이 스스로 명명한 ‘천지문’(天地門)이 내뿜는 매력이다.
한국 단색화의 거목인 윤형근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 1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오묘한 단색화 ‘천지문’ 작업을 중심으로 그의 화업을 되돌아본다. 
윤형근은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1947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류 조치 후 제적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학창시절 시위 전력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다. 전쟁 중 피란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에는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한 바 있으며,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에는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 연줄로 부정 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윤형근은 총 3번의 옥살이를 거쳐 그의 나이 만 45세가 된 197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면포나 마포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과 땅의 색인 암갈색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들이다. 제작 방법에서부터 그 결과까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 세파를 견뎌낸 고목(古木), 한국 전통 가옥의 서까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흙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총 4부로 나누어 그의 미술세계를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의 작업 초기,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1916-1974)의 영향을 보여주는 1960년대의 드로잉과 작품들이 전시된다. 윤형근의 조형언어가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1부의 드로잉들은 상당부분 처음 공개된다. 2부와 3부에서는 다양한 색채에서 출발했던 그의 작업이 역사와 부딪혀 순수한 검정에 도달한 상태를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색채인 청색과 암갈색이 섞인 ‘오묘한 검정색’이 담긴 ‘청다색’ 연작을 시작으로 작고 직전 발표한 작품까지 대표작을 선보인다.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작된 작품과 같이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담아낸 슬프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1980년 6월 제작된 작품 ‘다색’(1980)은 피와 땀을 흘리며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에 대한 헌사로서, 제작 이후 단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이번 전시에 최초 공개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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