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선정 불발에 유감
노벨문학상 선정 불발에 유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0.12 14:04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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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 매년 이맘때 연례행사의 하나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10월 첫째 목요일마다 발표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문학 ‘덕후’(골수팬을 의미)의 한 사람으로서 오랜 기간 글을 쓰며 마침내 제 평가를 받는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올해엔 그 즐거움이 사라졌다. 2016년 팝 가수 밥 딜런이 수상하면서 한 차례 건너 뛴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미투’ 파문에 휩싸이면서 불똥이 튄 것이다. 

논란은 지난해 11월 한림원 종신위원 중 한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인 장클로드 아르노가 20여 년간 한림원 소유 아파트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한림원의 재정 지원을 받아 문화센터를 경영하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에 한림원 첫 여성 사무총장인 사라 다니우스는 한림원과 아르노의 관계를 조사하도록 로펌에 의뢰했지만 전임 사무총장들이 스캔들을 부풀렸다며 되레 사퇴를 압박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스웨덴 여성들은 다니우스가 사임하던 날 입었던 커다란 리본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시위에 나서면서 거센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여년 전 규정을 근거로 한림원이 프로스텐손의 노벨문학상 위원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자 다른 노벨문학상 위원 18명 중 7명이 줄줄이 사임했다. 11명만으로는 수상자 선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한림원은 결국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노벨문학상이 문학의 거장을 뽑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추리‧SF‧환타지 등 장르 문학 작가들을 외면하고 있는 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음악‧영화 등에 밀려 점차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는 출판계에 매번 활력을 불어넣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 국내에도 수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처절하게 외면 받고 있다. 외국 문학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거머쥔 이후인 지난해와 올해 수상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벨문학상은 다르다. 어떤 책을 읽을지 알 수 없어 고민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통해 독서에 빠져든 사람들도 많다. 또한 바쁜 일상 때문에 책을 등한시하다가 수상자 발표를 통해 다시 서점으로 향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서히 쇠퇴하는 문학을 지탱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한림원이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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