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78] 물의 순례 -그 위대한 여정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78] 물의 순례 -그 위대한 여정
  • 이 기 찬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문헌번역실장
  • 승인 2018.10.26 10:46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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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순례 -그 위대한 여정

샘물이 졸졸졸졸 골짜기를 내려와

밤낮을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하누나

요란스런 울림이 바람결에 들려오고

차가운 개울소리 달빛을 안고 와서

시름겨운 나그네의 꿈을 오래 깨우고

늙은 시인 가슴마저 자꾸 흔들어대네

이렇듯 만년세월 흐르고 흐르면서

하많은 인생살이 얼마나 보았을까

鳴泉下谷口 (명천하곡구)

不捨暮朝催 (불사모조최) 

亂響隨風聞 (난향수풍문)

寒聲帶月來 (한성대월래) 

長搖愁客夢 (장요수객몽) 

頻擺墨翁懷 (빈파묵옹회)

萬古流無盡 (만고류무진) 

人生閱幾回 (인생열기회)

- 이응희 (李應禧, 1579∼1651), 『옥담사집(玉潭私集)』 「샘물[流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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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같은 금강(錦江)의 유장한 물길도 기실 그 시원(始源)은 ‘뜬봉샘’이라는 작은 옹달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어느새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만나고 다시 길을 재촉해 ‘수분천’을 지난 후 여러 지천과 합류하면서 비로소 금강으로 흘러듭니다. 그 뒤로도 물길은 오랫동안 이어져 옛 백제 땅을 굽이굽이 돌다가 마침내 서해 군산 앞바다의 품에 안기고서야 천리 머나 먼 대장정을 마칩니다.

이렇게 물은 반도의 산맥을 따라 수만 년을 굽이돌아 흐르면서 물고기와 새들의 고향이 되어주었고, 산과 숲과 들의 심장에도 말없이 스며가서 그 안의 생명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중략)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고 공자가 말한 것도 지혜로운 자의 삶이 물의 속성을 닮았으며, 늘 물에게서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은 순리를 따르는 합리성과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함과 밤낮을 쉬지 않는 근면성과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는 배려심과 채운 뒤에 흐르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기르지만 자랑하지 않는 덕스러움과 부딪쳐도 화내지 않는 인내심과 떨어질 때 주저하지 않는 용맹과 중도에 꺾이지 않고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강인함을 지녔습니다. 노자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 것도 이러한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렇게 늘 물처럼 살라고 이르는데, 자유로이 흘러가라 하는데, 공존이 아니라 정복을 택한 자본은 어느새 보(洑)의 수문 안에 강물을 가두고 생명이 회귀하는 길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 속 시원의 강물도 흐름을 멈추고 온통 검푸른 녹조로 뒤덮인 지 오래입니다. 이제 더 이상 눈부신 햇발 아래 빗살치는 유년의 꿈이 자라던 강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정말 우리는 영혼을 잠식해오는 메마른 불안과 두려움에 뒤척이거나 혹은 허허로운 갈망에 목말라하면서 끊임없는 탐닉과 순간의 욕망들을 소비하고만 있을까요?(하략)      

이 기 찬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문헌번역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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