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사진작가, 한미사진미술관 ‘상처 난 거리’ 전
김중만 사진작가, 한미사진미술관 ‘상처 난 거리’ 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16 14:11
  • 호수 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지에 인화된 나무 통해 고독한 도시인의 삶 담아

[백세시대=배성호시자]

스타 연예인을 모델 삼아 상업사진 작가로 이름 날리던 김중만 

돌연 소외된 것들의 삶에 관심… 35그루의 나무로 상징적 표현

이번 전시에서는 원빈·고소영 등 스타 연예인과 협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다 돌연 상업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소외된 것들을 담아온 김중만 작가의 최근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나요’(CAN YOU HEAR THE WIND BLOW, 2009)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원빈·고소영 등 스타 연예인과 협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다 돌연 상업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소외된 것들을 담아온 김중만 작가의 최근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나요’(CAN YOU HEAR THE WIND BLOW, 2009)의 모습.

가을비와 찬바람 때문에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진 지난 11월 9일,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각각 저마다의 모습을 간직한 ‘35그루’의 나무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유명 사진작가 김중만(64)이 포착한 나무들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잡아 쓸쓸히 서 있었다. 한지에 흑백으로 인화해 마치 간신히 ‘살아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이 달라졌다. 사진 속 나무들은 ‘살아남은’ 생명체가 가진 기운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수많은 스타들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김중만의 사진전 ‘상처 난 거리’ 전이 내년 2월 22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2008년부터 촬영해 한지에 인화한 뚝방길의 나무 35점을 공개한다.

김중만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연예인들을 모델로 삼아 십수년간 최고의 상업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1954년 철원에서 태어난 그는 사진에 반해 평생을 카메라와 동거동락했다. 돈이 없어 한동안 빌린 뷰 파인더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필름 없는 카메라의 셔터를 수없이 눌러댔다. 우여곡절 끝에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프랑스 니스의 국립예술학교 ‘빌라 아르송’으로 유학을 떠난 김중만은 곧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한지 여백이 인상적인 ‘걸어가는 인도주의자’(WALKING HUMANIST, 2008)
한지 여백이 인상적인 ‘걸어가는 인도주의자’(WALKING HUMANIST, 2008)

1979년 ‘아를 국제사진축제’에서 최우수 젊은 사진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프랑스에서 가장 젊은 사진작가 8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것이다.

국내로 돌아 온 뒤에는 우리나라 상업사진에 있어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잡는다. 1984년 ‘고래사냥’을 시작으로 영화 포스터, 광고 사진 등을 활발하게 찍는다. 1990년 발표된 김현식 6집 앨범, 영화 ‘괴물’, ‘타짜’, ‘달콤한 인생’ 등의 영화포스터가 그의 손을 거쳤고, 전도연‧원빈‧정우성‧이병헌‧고소영‧강수연 등과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러다 김중만은 2006년 돌연 상업 사진작가로서의 유명세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우리나라의 소외된 지역으로 렌즈를 돌렸다. 

그 계기는 이렇다. 그는 어느 날 한적한 길가에서 바람에 치이고 무관심에 밀려 지쳐 있던 나무를 보게 된다. 이날부터 그의 눈에서 유독 이 나무가 떠나지 않게 됐다. 이후 수차례 계절이 바뀌고 새들이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인적 드문 곳이었다. 

김중만은 나무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나무와 거리 두기를 반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그는 나무를 찍고 있었다. 그는 “그 ‘상처 난 거리’의 나무를 마주한 그날부터 지켜보기를 4년이 지나서야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나무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사진이 담고 있는 건 외로운 나무지만 그 너머에는 경쟁으로 상징되는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넌지시 보인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듯 사계절 속 모습을 담아낸 작품 속에서 나무들은 바람에 밀려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다가도 꿋꿋이 버티고(CAN YOU HEAR WIND BLOW, 2009),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홀로 서 있고(NOVEMBER RAIN, 2013), 온몸이 뒤틀리는 상황에서도(WALKING HUMANIST, 2008) 버텨낸다.  

김중만은 거센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진 후 스스로 회복되고 치유돼 가는 고독한 나무의 생명력을 경이롭게 담아냈다. 사람이면 누구나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고통스런 과정을 극복해내고 한 단계 성숙한다. 매년 나이테를 늘려나가며 단단해지는 나무처럼 사람들도 강인해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 너머로는 도시인들의 애환과 기쁨이 도드라진다. 

비록 대중들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새로운 피사체를 발견한 김중만은 국제적인 사진작가로도 발돋움했다. 2013년 미국 유명 영화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픽쳐 스튜디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파리 포토 행사에서 두 장의 사진을 샌디에이고 사진미술관에 판매했고 2010년에는 위스키 브랜드인 로얄 살루트가 매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선정, 시상하는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을, 2015년에는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