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3] 즐거운 나의 집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3] 즐거운 나의 집
  • 변 구 일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 승인 2018.11.30 10:58
  • 호수 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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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호젓이 문을 닫고 있으니 성시가 멀어

밝은 창 아래 때때로 남화경을 다시 읽노라

근년 들어 손님 끊고 대 보느라 정신없거니와

가을 되자 끼니도 잊고 꽃 따느라 바쁘다오

약 먹는다고 느는 백발을 어이 멈추리

책 읽어도 가난은 끝내 구제할 수 없다마다

양지바른 섬돌 밑에 오동나무 심어서

뜰안 가득 새 그늘을 실컷 드리우고 싶네

寂寂揜門城市賖 (적적엄문성시사)

晴牕時復讀南華 (청창시부독남화)

年來謝客貪看竹 (연래사객탐간죽)

秋後忘餐事採花 (추후망찬사채화)

藥餌何曾休白髮 (약이하증휴백발)

詩書終不救貧家 (시서종불구빈가)

堦南擬種靑桐樹 (계남의종청동수)

贏得新陰滿院斜 (영득신음만원사)

- 장혼(張混, 1759~1828), 『이이엄집(而已广集)』권7 「그윽한 집(幽居)」


산자락 깊은 곳이 시인이 사는 집이다. 집에 앉아 세속을 잊기로는 『장자(莊子)』만큼 좋은 책도 없다. 대나무는 속기(俗氣)를 빼 주고, 국화를 따다 보면 도연명(陶淵明)이 그리워진다. 속절없이 늙어가기만 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없는 처지를 돌아보면 불만이 없을 수도 없지만 오동나무 그늘 속에 조용히 묻혀 사는 길을 택한다.

한양(漢陽) 도성의 서쪽 인왕산(仁王山) 밑에 살았던 장혼이 자신이 사는 집의 정취(情趣)를 읊은 4수의 연작시 가운데 마지막 수이다. 장혼은 중인(中人) 출신으로, 어려서 개에 물려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글공부에 매진하여 글을 가르치는 일로 살았다고 한다. 이후 32살에 처음으로 책을 인쇄하는 감인소(監印所)의 사준(司準)이라는 종8품 말단 벼슬을 받아 교정(校訂)하는 일을 했는데 정조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나다고 정평(定評)이 나서 58살까지 종사하다 물러났다고 한다.(중략)

장혼은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평생지(平生志)」라는 글을 통해 묘사하면서 상상 속의 그 집을 이이엄(而已广)이라고 명명하였다. 한문(漢文)에서 ‘이이(而已)’는 ‘뿐이다’, ‘그만이다’라는 뜻의 어조사(語助辭)인데 이러한 어조사를 자기 집의 이름으로 삼은 속내는 그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혼자 지낼 때에는 헌 거문고를 만지고 고서를 뒤적이면서 그 사이에서 생활할 뿐이고, 생각이 나면 나가서 산속을 거닐 뿐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술상을 차리라 하고 시를 읊을 뿐이고, 흥이 나면 휘파람 불고 노래 부를 뿐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을 뿐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물을 마실 뿐이다…(중략) 

장혼의 소망이 간절하였던지 늘그막에 결국 그는 이이엄을 지어 뜻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이엄을 짓고 나서 박치도(朴穉度)라는 벗을 그리워하는 시가 그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변 구 일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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