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 가보니 ‘노서동 금귀걸이', ‘황오동 금귀걸이’ 닮아도 너무 닮아
새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 가보니 ‘노서동 금귀걸이', ‘황오동 금귀걸이’ 닮아도 너무 닮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30 13:35
  • 호수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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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낡은 진열장 전면수리하고 LED등 설치해 쾌적한 관람 환경 마련

‘경주 황남대총 남분 은관’, 이사지왕도 명문대도 등 650여점 선봬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왼쪽)와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가운데)는 얼핏 보면 똑같지만 밑부분을 보면 한쪽은 둥글고 다른쪽은 뾰족하다는 차이가 있다.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왼쪽)와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가운데)는 얼핏 보면 똑같지만 밑부분을 보면 한쪽은 둥글고 다른쪽은 뾰족하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들어서자 황금빛을 발하는 ‘새 한 마리’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좀더 가까이 다가서자 보물 제630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이 자태를 드러냈다. 새로 교체된 진열장과 선명한 LED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은 신라의 찬란한 1000년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실 선사고대관의 신라실(전시실 호수 108호~110호)을 새롭게 단장해 11월 20일부터 재공개 했다. 신라실 개편은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낡은 전시 환경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낡은 진열장을 전면 수리하고 조명을 LED로 바꿔 관람객의 창의력 및 감성을 자극하는데 최적인 색온도인 3000K(가정 내 백열전구 수준)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전시 구성도 단순 나열식이 아닌 역사 문화의 큰 줄거리 전달에 중점을 둬 변화를 꾀했다. 그간 진행된 연구 조사와 성과를 반영해 신라 형성기를 새로 추가, 국가의 성립과 성장에서 삼국통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보물 제455호와 보물 제2001호로 지정된 경주 노서동 귀걸이와 경주 황오동 귀걸이를 비롯, 국가지정문화재 15건과 새롭게 선보이는 경주 황남대총 남분 은관(보물 제631호)과 이사지왕도  (尒斯智王刀)와 십(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경주 금관총 출토 이사지왕도 명문대도’ 등 650여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을 선보인다.

전시장 앞부분은 4세기 신라의 성장 과정을 다룬다. 철제 무기를 대량으로 전시해 당시 신라의 성장 원동력이 철을 토대로 한 무력과 전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이 새단장하였다.

이어지는 5세기 마립간의 시대에서는 관 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비롯해 각종 황금 장신구 70여점을 밀도 있게 집중 전시, ‘황금의 나라’ 신라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개편을 통해 황금 전시품을 더욱 가까이, 자세히 관람할 수 있게 배치해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또 대형진열장(높이 3.5m, 길이 7m)에 신라 토기를 밀집 전시해 동아시아 도자문화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라 토기의 특징을 만나볼 수 있다.

이중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와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1933년 발굴한 노서동 금귀걸이는 노서동 215번지 신라 고분에서 출토한 ‘경주 노서동 금팔찌’(보물 제454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제456호)와 함께 보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때 지정 명칭을 출토지를 빼고 ‘태환이식’(太環耳飾·굵은고리 귀걸이)으로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보물 지정 직후 출간된 각종 자료에 노서동 금귀걸이와 크기·형태·제작 기법이 유사한 황오동 금귀걸이 사진이 실렸고, 2009년 국보와 보물 명칭을 개선할 때 보물 제455호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라 명시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 황오동 금귀걸이를 보물 제2001호로 신규 지정하고 노서동 금귀걸이에 본래 번호를 돌려주며 혼란이 일단락 됐다. 

실제 두 유물은 멀리서 보면 구분이 힘들다. 아래 부분이 둥글면 노서동 금귀걸이고 뾰족하면 황오동 금귀걸이다. 두 유물의 얽힌 사연과 차이를 살펴보면 전시의 재미가 배가된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 은관.
경주 황남대총 남분 은관.

처음 공개된 경주 황남대총 남분 은관도 인상적이다. 큰 테 위에 주식(主飾) 3개를 붙인 형식으로 주식은 신라시대 관모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특이한 양식이다. 중앙의 주식은 윗부분에 돌기가 솟아 있는 마름모꼴 형태로 그 위에는 투각무늬가 장식되고 둘레에 점렬문(點列文)이 있다. 그 좌우에는 반월형 은판을 붙이고, 바깥쪽은 일정한 폭으로 오려낸 다음 하나하나를 꼬아서 새털같이 만들었다. 세 개의 주식은 이른바 조익형(鳥翼形) 관식의 형태를 약식화한 것으로, 새털 모양을 모방한 것은 신라의 금관 형식에는 없었던 것이다.

신라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중고기(6-7세기)를 보여주는 공간에서는 불교, 율령, 문자 등을 바탕으로 중앙통치체제를 완성하며,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해 갔던 신라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금석문과 문자 자료 등을 소개한다. 이 시기 신라의 역사를 잘 웅변해 주는 진흥왕 순수비가 서울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 있던 당시의 모습을 대형 이미지와 함께 전시해 본래의 위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했다.

또 신라 황금장신구를 주제로 한 시청각 효과를 높인 특별한 공간(인터렉티브 미디어)과 전시 도입 공간을 별도로 신설해 직접 참여가 가능한 새로운 볼거리와 휴식 공간도 마련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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