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김정은 연내에 못오는 이유
[백세시대 / 세상읽기] 김정은 연내에 못오는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2.14 15:23
  • 호수 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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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서울 방문 요청에 그 자리에서 “가겠다”고 대답했고 문 대통령은 그 시기가 “올해 안”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말들은 12월을 보름 정도 남긴 시점에서 모두 물 건너간 얘기가 됨 셈이다.

청와대는 12월 12일, “북한에서 연락이 온다고 해도 우리로서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고 현재로선 북쪽에서 결정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내년 1월 말에 잡힌다면 북한이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서울 답방은 그 뒤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서울에 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질 게 없어서다.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바는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에 따른 경제 지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은 갈수록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나마 기댈 여력이 있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 마찰이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해 미국의 대북정책에 따르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번 유럽 방문 당시 프랑스·영국·독일 지도자들에게 대북제재 완화를 부탁했다가 면전에서 거절당했다. 

김정은이 서울에 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 체제 훼손, 최고존엄 모독, 경호 문제 등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북한은 체제와 존엄 문제를 가장 중시하는 특수국가인데 김위원장 방문 시 태극기 부대가 인공기를 불태운다든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화형식을 한다든지 하는 행사가 신문·방송을 통해 국제사회에 중계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은 김정은이 외부 일정에 나설 때마다 철통같은 경호를 펼친다. 김정은은 판문점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수십 명의 경호원에 이중삼중으로 둘러싸여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에 우호적인 중국을 방문할 때도 한밤중 불시에 이뤄지는 판인데 하물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서울에서의 신변안전 보장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북은 연말 행사가 촘촘하게 짜여 있다. 17일은 김정일 사망 7주기로 중요한 정치일정 중 하나다. 김정은은 이날 고위간부들을 대동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다. 김정숙 생일,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일 등 기념일이 이어진다. 특히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 계획을 세우는 ‘총화’ 기간이라는 점에서 평양을 비울 수 없는 부담감도 있다.  

그러나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따른 불이익도 적지 않다. 우선 남한의 ‘구애’에 대해 북측이 거절한 셈이 됐기 때문에 김정은의 신뢰도에 흠집이 생길 여지가 많다. 북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뿌리 깊고 비핵화 진정성까지 의심 받은 상황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면 그렇지”하는 실망감이 커지고 그에 비례해 불만 여론이 확산되면서 화해 분위기가 둔화되는 게 불가피하다.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해 제재 국면에서 활로를 모색하려는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데 주력해왔으나 이번 일이 빌미가 돼 그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서울 답방 불발 배경의 하나로 이런 예측도 가능하다.   

북한은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에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한국은 북에 3조원에 가까운 돈과 현물을 퍼주었다. 여기엔 민간 차원의 지원 투자,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에 들어간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은 식량 차관 형식으로도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빌려주었지만 상환 기한이 지나도 북은 모른 체 하고 있다. 김정은이 서울에 온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맙다거나 빚을 못 갚아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김정은은 그 말이 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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