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명동칼국수
[백세시대 / 세상읽기] 명동칼국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2.28 11:16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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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열며 명동에 들러 장수 뜻하는 국수 한 그릇 비우는 것도 좋을 듯”

기자는 매주 명동을 찾는다. 중국인 관광객들과 포장마차로 뒤범벅이 돼 걷기조차 힘든 이곳을 주말마다 찾는 일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지만 반드시 나가야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동칼국수를 먹는 일이다. 성당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아내를 따라 건성으로 가는 것이고 진짜 목적은 칼국수이다. 

향기로운 닭고기국물과 비단 같이 부드러운 국수, 톡 쏘는 마늘김치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한 주 내내 허전함을 느낀다. 명동칼국수는 아내와 함께 20대부터 다니던 단골음식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장소도, 음식 맛도 여전하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마늘김치이다.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비벼 만든 배추겉절이를 입에 넣는 순간 콧구멍에서 싸한 마늘냄새가 뿜어져 나오면서 입안 전체가 얼얼해진다. 그렇지만 이 알싸한 마늘 맛이 육수의 느끼함, 국수의 밋밋함과 어우러져 고기와 야채가 뒤섞인 풍부한 맛을 선사한다. 

맛만큼이나 특별한 건 이 집의 식탁과 의자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손바닥만 한 좌석 크기, 직각의 등받이는 한 사람이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식탁 위 칸막이는 1인 고객을 타인의 눈길로부터 은폐해주고 1인 고객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석을 없애준다. 

이 식당의 메뉴는 단조롭다. 칼국수를 비롯 암퇘지고기·채소·부추·갓 짠 참기름으로 만든 소를 채운 만두, 비빔국수, 콩국수 등 4가지다. 콩국수는 콩과 검은콩을 맷돌로 갈아 만든 콩물에 클로렐라국수를 말아 먹는 여름철 건강식이라고 집주인은 말한다.    

노포(老鋪) 답게 식당을 찾는 고객들 가운데 노인들이 많다. 그 중 여성도 적지 않다. 옷을 깨끗하게 차려 입고 머리를 곱게 빗은 60~70대의 여성들이 혼자 앉아 국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뒤 모습에 애잔한 느낌도 갖는다. 요즘에는 일본·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도 이 집의 마늘김치를 부담 없이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명동칼국수는 1970년대 후반 상호를 ‘명동교자’로 바꿨다. 식당 주인은 명동칼국수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많은 분식집, 국수집들이 생겨나면서 명동칼국수란 이름이 싸구려 국수집의 대명사처럼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칼국수에는 4개의 교자가 동서남북처럼 국수 위에 얹혀 나온다.

명동교자는 1966년 서울 중구 수하동의 한옥을 개조한 ‘장수장’에서 출발했다. 이후 서울의 문화예술 중심지였던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명동교자 홈페이지에 ‘개업 당일부터 손님들이 문밖에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보여 명동 최고의 명소가 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밖 성시는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광경이 됐다. 현재 명동교자는 명동 2곳과 이태원점 등 3곳이 있다. 

새해 첫날 행운을 부르는 음식 가운데 면이 빠지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등 여러 아시아 국가는 새해 첫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면을 먹는다. 중국은 장수를 기원하는 면과 함께 쟈오즈라는 만두를 먹는다. 쟈오즈는 무사고를 기원하는 두부와 배추, 가족운을 바라는 땅콩, 자식을 기원하는 대추 등을 속재료로 만든다. 

일본은 연말연시에 ‘해를 넘기는 소바’라고 해서 토시코바소바를 먹는다. 국수를 이로 끊어먹듯 안 좋은 일들을 잊자는 의미에서다. 소바라는 발음이 ‘함께 한다’는 소바니와 비슷해 가족이 함께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자는 의미도 담겨있다. 모양을 낸 채소와 해산물이 들어간 오세차, 떡국 종류인 오조니 등도 먹는다.

새해를 여는 날, 명동교자에 들러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며 일년 구상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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