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 기리는 전국 주요 문학관들… 흉상 갖춰 작가에 더 가까이
한국문인 기리는 전국 주요 문학관들… 흉상 갖춰 작가에 더 가까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1.04 14:22
  • 호수 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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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서촌엔 ‘이상의 집’, 북촌엔 ‘윤동주 문학관’… 친필원고, 사진 등 볼 수 있어

평창 ‘이효석 문학관’, 옥천 ‘정지용 문학관’, 안동 ‘이육사 문학관’ 도 인기

문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최근 재단장한 ‘이상의 집’에 새롭게 설치된 이상 흉상의 모습.
문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최근 재단장한 ‘이상의 집’에 새롭게 설치된 이상 흉상의 모습.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고 한국인 특유의 평범한 작은 눈을 하고 있지만 그 너머의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내의 모습. 지난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마주한 이상의 흉상은 이런 느낌을 풍겼다. 재단장에 맞춰 조각가 최수앙의 손에서 탄생한 60cm의 동제(銅製) 흉상은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며 이상의 문학세계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상의 집처럼 우리나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문학관을 중심으로 한 축제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가 하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특유의 분위기로도 주목받고 있다. 

전국 85개 문학관을 회원으로 둔 한국문학관협회에 따르면 미가입 문학관까지 포함해 전국적으로 110여곳이 운영 중이다. 또 국립한국문학관이 서울 은평구 옛 기자촌에 들어서는 것을 비롯해  지역별로 지역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 건립에 나서며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상의 집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문학관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이다. 윤동주는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정병욱 등과 함께 하숙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별 헤는 밤’과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대표작을 썼다. 

이것에 착안해 만들어진 것이 윤동주 문학관이다. 2008년부터 기능을 상실해 방치된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2012년 문을 열었다. 서울시 건축상(2014)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문학관은 3개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시인채로 불리는 제1전시실은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이다. 9개의 전시대에는 각종 사진자료와 친필원고가 있는데,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시인이 1944년 일본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판결문, 그의 재학시절 학적부 등이 눈길을 끈다. 전시실 한쪽 벽에는 시인이 생전에 즐겨 읽던 시집과 책들의 표지가 걸려 있다. 또 중앙부에는 시인의 고향인 길림성 용정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우물(모형)이 있고, 그를 둘러싼 유리벽에는 ‘자화상’이 적혀 있다.

이효석 문학관 내 설치된 이효석 동상.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효석 문학관 내 설치된 이효석 동상.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매년 40만명의 관광객이 찾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축제로 선정된 강원 평창 ‘효석문학제’는 2002년 문을 연 ‘이효석 문학관’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효석은 평양에서 살다 광복을 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남한에 남은 유품이 거의 없어 그의 고향인 봉평면 주민들이 가족과 지인 등을 수소문해 전시품을 긁어모았다. 그 결과 평양의 ‘푸른 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 속 풍경은 크리스마스트리부터 책상 옆 축음기, 벽에 걸린 서양 여배우 액자 하나까지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문학관은 문학전시실과 다양한 문학체험을 할 수 있는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전시실은 그의 삶과 문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서재를 재현하고 옛 봉평장터의 모형을 만드는 등 생생한 문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꾸며졌다.

충북 옥천에는 한때 월북작가로 분류돼 금기시 됐던 정지용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옥천 출신으로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은 섬세하면서도 정감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2005년 개관한 정지용 문학관은 이런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대표적인 것이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정지용의 시어세계’다. 정해진 위치에 서서 손바닥을 회초리 맞듯이 앞으로 내밀면 ‘우리 오빠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후락 딱 딱/훠이 훠이!’(‘홍시’ 중) 같은 정지용의 시 속 글귀가 손바닥 위를 흐른다. ‘향수’, ‘백록담’ 등 화면 속에서 음악을 배경으로 흐르는 시를 마이크 앞에서 노래 부르듯 낭송할 수 있는 시낭송실도 이색적이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펴낸 ‘정지용 시집’ 초판과 그가 “시도 청춘에 병 되기 쉬운 것이 아닐 수도 없을가 하오니”라고 조지훈 시인에게 쓴 친필 편지 등을 둘러보다 보면 사진 속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시인이 옆에 있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경북 안동 도산면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목인 원천리 불미골에는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이육사 문학관’이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1904년 태어나서 1944년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두고 북경의 차디찬 감방에서 숨을 거두기까 시와 독립운동이라는 치열한 저항의 길을 걸었다. 첫 수감 시 수감번호였던 ‘264’는 그의 저항의 상징이자 시세계를 암시하는 기호였다. 

이육사문학관 전시실은 크게 세 가지 공간과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1층은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 독립운동의 자취를 다양한 방법과 매체로 구성해 놓았다. 생애 코너에서는 동선에 따라 그의 삶의 궤적을 좇아볼 수 있고, 문학세계 코너에서는 그의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독립운동 코너에 들어서면 육사가 걸었던 항일운동의 가시밭길을 생생하게 따라갈 수 있다.

2층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원천리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시상(詩想)전망대’ 등이 갖춰져 있어 문학관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다. 문학관 건물을 나서면 전원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문학관 주변에는 연못과 분수대, 육우당(생가), ‘청포도 샘’과 ‘청포도 밭’, 이육사 동상 등이 조성돼 그의 시 세계를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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