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한미군 철수, 미 국민도 원하지 않는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한미군 철수, 미 국민도 원하지 않는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2.21 20:45
  • 호수 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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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74% 장기 주둔 지지, 남침시 추가 병력 투입 찬성 64%

북한의 비핵화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얼까. 그것은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 남한 등 주변국의 협조를 받아 경제 성장까지 이룬 뒤 남한에 지배력을 가하거나 공산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혹자는 북한의 핵 공격에 남한이 2차 대전 끝물에 망신창이 된 일본 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한다. 그러나 마지막 경우는 고도화된 첨단무기와 현대의 다국 간 안보협력 체제 하에선 실제로 일어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에선 완전한 북핵 폐기가 아닌 핵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에 그치는 이른바 ‘스몰딜’(작은 거래) 합의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즉, 재선의 야망을 갖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몰딜의 당근으로 김정은이 원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평화조약 체결 등의 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북이 핵실험만 하지 않으면 된다”며 스몰딜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협상에 임한다고 했을 때 남한으로선 손 놓고 쳐다만 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북·미정상회담은 온전히 그들만의 이벤트이며 남한이 개입할 틈새도 없을 뿐더러 북·미를 비롯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국들이 남한의 국가 파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미국 내에서조차 미군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위안 받을 만하다. 

미국 민주당 톱 멜리나우스키 의원과 공화당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최근 미 하원에 ‘한미동맹지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이 자력으로 한반도의 무력 충돌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만한 군사적 역량을 갖추었음이 입증되기 전에는 주한미군을 2만2000명 미만으로 감축할 수 없다. 미국 의원들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주시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핑계로 북한과 얼렁뚱땅 아전인수의 협약을 체결할 경우 이를 즉각 저지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외교 참모들에게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공화당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이 지난해에 개정돼 발효된 국방수권법에 근거해 ‘의회의 승인 없이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의원들의 입장은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반영한다. 2018년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4%는 장기적인 주한미군 주둔을 지지하며 64%는 남한이 공격을 받을 경우 추가 병력을 투입하는 것에도 찬성한다. 북한이 비핵화 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에도 주한미군 완전 철수에 찬성하는 미국인은 18%에 불과하다. 

문제는 따로 있다. 북에 대한 실속 없는 퍼주기 정책이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비용을 대겠다는 뜻이다. 

그간 남한은 북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다. 햇볕정책이 추진됐던 1998 ~2008년간 정부는 경수로 사업에 1조4300억원, 남북한 철도연결에 7500여억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당초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북은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하고도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비밀리에 핵개발에 전력투구, 핵무기를 완성했다. 헛돈을 쓴 셈이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제대로 의심했다면 아낄 수 있던 피 같은 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멀지도 않은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고 김정은의 속내가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건마다 대응 태세를 갖춘 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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