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대한콜랙숀’ 전, 간송이 전 재산 바쳐 지켜낸 문화재들
DDP ‘대한콜랙숀’ 전, 간송이 전 재산 바쳐 지켜낸 문화재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2.21 21:01
  • 호수 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급 유물 60여점 한 자리에

국보 제68호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왼쪽)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국보 제68호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왼쪽)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일제가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을 일삼던 1930년,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청년이 있었다. 구한말 종로4가의 상권을 장악한 부모의 유산을 모두 상속받은 24살의 청년은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데 돈을 쓰지 않았다. 그는 전 재산을 바쳐 일본에 반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지켜냈다. 문화로 나라를 지키는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 이야기다. 

이런 그가 지켜낸 대표 문화재를 한자리에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에서는 국보 6점, 보물 8점을 비롯한 60여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5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먼저 ‘전하다’ 섹션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흔적을 담았다. 보성학교가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폐교위기에 처하자 간송이 황해도의 3000석지기 땅을 처분해 보성학교를 인수한 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모으다’에서는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보화각이 탄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려청자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이곳에 전시됐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본 간송 전형필은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맑고 푸른빛이 감도는 청자에는 화려한 구름 문양과 이를 가로지르는 69마리의 학이 자리잡았는데 돌리면서 감상하면 1000마리로 보인다 해서 ‘천학매병’이라고도 불린다. 1935년 일본인 골동상에게 이 매병을 소개받은 전형필은 당시 서울의 고급 기와집 10채 값인 2만원을 주고 품에 안았다. 개성 인근에서 발굴돼 골동 거간을 거쳐 일본인에게 넘어갈 뻔한 것을 그가 지켰고 국보 제68호이자 아름다운 고려청자의 대명사가 됐다.

‘지키다’ 공간에선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품을 경매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합법적 문화재 반출구였던 경성미술구락부는 간송에게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이었다.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사들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국보 제294호), 예서대련(보물 제1978호), 침계(보물 제1980호) 등을 만날 수 있다. 간송이 아니었으면 헐값에 팔려갔을 문화재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고마움이 느껴진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되찾다’에서는 간송이 1937년 영국 귀족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수집한 도자기 컬렉션 스무 점을 선보인다. 개스비는 25세부터 일본 도쿄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꾸준히 고려자기를 수집했다. 일본 정세가 불안해지자 개스비는 컬렉션을 처분하려 했고, 간송은 집안 대대로 내려왔던 충남 공주 일대의 땅 1만 마지기를 팔아 개스비 컬렉션을 사들였다. 1마지기 면적을 충청도에서는 200평으로 치니 1만 마지기에 해당하는 200만 평은 남산 면적의 두 배, 축구장 925개 크기에 달한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과 바꾼 도자기들은 ‘고려청자기린형향로’ ‘고려청자원숭이형연적’ 등으로 훗날 국보 4점과 보물 5점으로 지정됐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